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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주: 좋은 글에 대한 감흥을 시로 표현해 보고자 합니다.
바람은 잊힌 이름을 실어 나른다.
성긴 달빛 없는 밤,
나는 검은 샘 속에 잠겨
자발 없이 떠도는 돌멩이였다.
그들의 침묵
쇳빛 새장,
내 어깨에 내려앉은 보이지 않는 궤(軌).
사과(謝過)의 열쇠는 결코 오지 않았다.
그래도 새벽은 서리꽃으로 피었다.
용서란 무엇이던가.
한 마리 불온한 새,
스스로 날개를 꺾고도
다시 황금 깃털을 틔우는 일.
파편이었던 기억이
서늘한 이슬로 바뀌는 연금술.
나는 내 안의 돌을 집어 올려
심연으로 던진다.
탁, 탁, 탁 …
파문이 새벽의 심장을 두드리자
숨죽이던 별무리가
수면 위로 망명해 온다.
그 순간 알았다.
용서는 타인에게 건네는
하얀 장미 한 떨기가 아니다.
용서는 스스로의 흉터에 씌우는
은빛 월계관.
비명 같던 기억은,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검은 흙을 열어젖히고
빛의 샘을 길어 올린다.
나는 발목을 휘감던 사슬을
조용히 벗겨 내어
무화과 잎처럼 강물 위에 띄운다.
물이 그것을 품어
빛나는 비늘로 바꾸었다.
그리고 새벽.
새는 다시 날아 오른다.
무중력의 언어로 하늘을 긋고
어제의 돌멩이를
오늘의 별씨(星種)로 흩뿌린다.
달 없는 정원에
어둠조차 눈부신 수정이 자란다.
그 빛을 마시며,
나는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에 답한다.
“네가 스스로를 놓아주었는가.”
내 안의 강은 침묵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작가주: 용서의 정원
가슴 깊은 곳에 심어진 상처의 씨앗이 얼마나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자라났는지
그들의 말은 날카로운 바람이었고 그들의 침묵은 더 차가운 서리였지만
나는 이제 알았다
용서가 봄비라는 것을.
사과받지 못한 아픔도 인정받지 못한 눈물도 모두 거름이 되어 용서의 꽃을 피운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내 마음의 정원에 평화의 꽃을 심는다
용서는 그들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내게 주는 자유 내게 주는 치유
내게 주는 새로운 시작
이제 나는 짐을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간다
용서의 정원에서 피어난 꽃들과 함께
밤의 강둑에 홀로 서 있었다
달빛은 오래된 상처처럼 얇고 차가웠고
나는 내 등뼈에 걸린 묵직한 돌멩이를
끝내 놓지 못한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바람이 속삭였다
“가만히 있어도 강물은 흘러,
그러니 너는 네 안의 바위를 내려다보아라.”
나는 저들의 날선 말투,
심장에 파고든 침묵,
알 수 없이 짠내 나는 밤들을 기억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억들이
결국은 흙이 되어
내 뿌리를 감싸고 있음을
이윽고 깨달았다.
그래, 용서는
강물이 스스로 얼음장을 깨고
다시 흐르는 일.
누군가의 사과라는 돌다리를
기다리며 멈춰 서는 것이 아니라,
돌다리 없는 곳에서
물빛으로 건너가는 용기.
나는 내 안의 돌멩이를
가만히 강물에 던졌다.
동그란 파문이 어두운 물살을 흔들고
달빛 한 조각이
내 안에 작은 정원을 열었다.
거기서 꽃이 피어났다
사라지지 않은 아픔을 거름 삼아
복사꽃빛 분홍으로,
상처 위에 새로 돋은 잎맥처럼 여리게.
그들에게 주려던 용서는
결국 나를 위한 물 한 모금이었다.
목을 축이고 나니
바람은 다시 불었고
강물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짐을 놓아라,
너는 흐를 자격이 있다.”
그리하여 나는
달빛이 거둬들인 새벽 길 위로
빈 손,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나섰다
어제보다 맑은 물소리 속으로,
오늘보다 깊은 자유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