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나는 자리
작가 주: 어제 발행한 글의 형제/자매 글입니다.
https://brunch.co.kr/@juanlespins/346
바다는 말없이
푸른 숨을 내쉬고
한 척의 흰 돛이 느리게,
아주 느리게
빛 위를 건넌다
바람이 부는 쪽에
작은 돛을 올린다
흘러가는 건 바다가 아니라
나를 지나칠 삶이다
우리는 떠난다
멀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머물기 위해
흘러가 버릴 순간 속에
발을 담그기 위해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낯선 골목의 그림자가
낮고 긴 노래를 부르면
잊고 있던 내 이름이
조용히 깨어난다
돌아와도 그 날의 바다는
내 안에서 물결치고
그 물결은 회색 하루를
푸른빛으로 적신다
삶은 묻지 않는다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오늘,
바람이 부는 쪽으로
돛을 올리자
그 항해가 짧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삶이 우리를
놓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