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선택
오늘도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잘지, 글을 쓰고 잘지 말이죠.
지금까지 살아오며 많은 선택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그중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 선택이 요즘 이따금씩 생각납니다.
2018년 4월,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서 1주일 정도 회복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생각보다, 쌩쌩했던 나는 뭐, 이제 별 무리 없겠네. 하고 편안히~ 있었습니다.
지방에만 있던 저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의 삶이 신기했습니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환자교육도 해준다고 하고 말입니다.
밤 10시만 되면 다 불이 꺼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방의 병원과 달리, 서울의 큰 병원은 24시간 마트도 있고, 식당도 여러 개고 심지어 쇼핑도 할 수 있다니, 너무 놀라웠습니다.
수술로 제거한 부위는 오른쪽 유방의 일부와 오른쪽 팔의 림프절 일부였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간호사 선생님들도 '움직이는 걸 추천드려요'라고 하셨기에 열심히 뽈뽈뽈 걸어 다녔습니다.
수술 후 3일이 되자, 정해진 시간에 모이라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모여 보니 나와 같은 병명의 환자들에게 팔 스트레칭을 하는 운동을 알려주는 비디오를 틀어놓고 운동을 하라고 했습니다. 뭐, 그런 건 선택하지 않습니다. 하라면 해야죠. 그렇게 운동을 하고 깨달은 건 내가 가장 어리구나. 였습니다. 그때 나이 만 29세. 그리고 타고난 붙임성으로 +20-30세 윗분들과 대화 나눔에 있어서 어려움을 갖고 있지 않은 저는 어머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뭐 나이만 만 29세였지 이미 세 아이의 엄마인 상태였으니까 못할 건 또 뭐가 있었을까요. 그렇게 어머님들께 좋은 정보를 하나 얻었습니다. 12층에 살고 있는 저였는데, 6층에 가면 정원이 있다더라.. 하는 정보였지요. 그래서 그 시간에 바로 움직여보았습니다. 하하하. 움직이면서 느끼는 건 밝은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건 우리 병동뿐이었구나. 지나가다 마주친 또 다른 여성병동에선 아무런 움직임도 밝은 기운도 없었습니다. 수술을 한 뒤 당분간 움직이기 힘든 곳이었겠지요. 여성성을 내려놓았다는 그 점에서부터 상심이 남달랐을 테니까요. 그때부터,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병동을 지나고 호흡이 어려워 몸 만한 기계를 달고 다녀야 하는 어르신들의 병동을 지나치며 정원에 도착하여 그래도 병원 속 자연이 있음에 매우 감사함을 느끼며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긍정회로의 시간은 딱 그때까지였습니다.
같은 병실에 있던 환우분은 저보다 2일 먼저 수술하셨기에, 마지막 퇴원 전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항암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으십니다. 예상하셨던 항암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교수님의 말이 그 순간에는 어떤 값진 보석보다 귀하게 느껴진다는 걸 저는 압니다. 그리고 몇몇 분에게 회진 후 병실 문 옆에 있던 저에게 오셔서 하시는 말씀
"수술 중 감시림프절 간이 검사에서는 전이가 없었는데 최종 검사에서는 0.5mm 딱 그만큼의 전이가 발견되었어요. 그래서 암의 크기와 전이기수로 2기 중반이 나왔네요."
"..."
"항암을... 하는 게 좋겠어요.."
"네?"
적잖이 당황해하는 나를 보고 교수님은 우선 내일 또 이야기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암의 크기는 컸지만, 호르몬 강양성의 타입이었고 전이가 없었기에 호르몬제를 항암약으로 투약하고 호르몬 억제제를 맞는 것으로 분명 이야기가 다 되었었기에 나에겐 그 한마디가 정말 청천벽력이었죠.
그 길로, 자주 지나치던 병실들을 다 지나치고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전화를 눌러 남편에게 전화를 했죠.
아, 수술을 하고 친정엄마가 올라오셔서 있다가 혼자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술 날 걱정된다며 휴가를 내고 서울로 왔던 남편 앞에서도 울지 않았던 제가, 암 선고를 받는 그날에도 울지 않았던 제가 전화를 해서 정말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항암 하기 싫은데..... 하기 싫은데.... 하기 싫은데.........." 그 말만 되풀이했죠. 남편 역시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을 알기에 "지금이라도 서울 올라가 줄까?" 하는 말을 해주기에 그 말에 정신을 차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되지요.
"교수님, 저 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