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에는 왜 초콜릿을 선물할까
화이트 데이 이야기를 했으면, 화이트 데이 캔디의 ‘단초’를 제공한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풍습은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이지만, 과연 예전에도 그랬을까. 특히 밸런타인데이가 유래한 유럽에서?
밸런타인데이에는 왜 초콜릿을 선물할까.
2018년 2월1일, 밸런타인데이(2월 14일)를 2주 앞둔 시점에서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게재한 전면광고가 일본 전역에서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일본은 ‘의리 초콜릿(義理チョコ·기리초코)’을 그만하자>는 제목의 이 광고에서 고디바는 “진심으로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은 좋지만 의리 초콜릿은 하지 않아도 좋다”고 강조했다.
도대체 ‘의리 초콜릿’이 뭐 길래? 의리 초콜릿은 밸런타인데이에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주는 선물로, 또는 평소에 전하지 못했던 사랑을 용기 내어 고백하는 의미로 주는 초콜릿이 아니라, 단지 직장 동료나 친구들이 ‘섭섭해할까봐’ 챙겨주는 초콜릿을 의미한다.
이 광고는 밸런타인데이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초콜릿을 돌리는 데 부담을 갖고 있던 일본 여성들에게 많은 공감을 샀다. 실제로 일본의 일부 기업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의리 초콜릿을 암묵적인 사내 괴롭힘의 하나로 규정하고 자체적으로 금지시키고 있기도 하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오랜 기간 밸런타인데이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인식돼 왔다. 점차 이런 모습이 변해가는 듯하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풍습은 일본에서 유래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주는 관습이 자리 잡은 것은 19세기 미국에서의 일로 보고 있지만, 이 선물의 내용을 초콜릿으로 ‘특정’한 것은 20세기 이후 일본에서 시작됐다. 1936년 2월 12일 고베의 ‘모로조프 제과’가 영자신문인 Japan Advertiser에 ‘당신의 밸런타인에게 초콜릿 선물을’이라는 영문 광고를 게재한 것이 최초의 초콜릿 선물 캠페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이 캠페인은 주로 일본 내 서양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일본 국민들에게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1960년대 초반이다. 당시는 일본에서 페미니즘이 눈을 뜨던 시기여서 이 때문에 ‘여자들도 적극적으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다’는 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모리나가제과가 밸런타인데이 마케팅 이벤트를 벌이면서 초콜릿 선물이 유행하게 됐다. 처음에는 초콜릿이 ‘고백’의 도구였지만, 1968년 전자회사 소니에서 ‘연인 뿐 아니라 주변 남성에게도 초콜릿을 선물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이른바 ‘의리 초콜릿’이 태어나게 됐다.
여성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 일본에서 시작된 밸런타인데이 풍습은 20년 뒤 우리나라에 수입됐다.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문화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80년대. 당시 유명 제과점이었던 고려당에서 1982년 하트 모양 초콜릿을 개발해 3000원에 판매했다는 신문 기사가 사진과 함께 소개되기도 했다. 백화점에서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일본의 ‘의리 초콜릿’ 문화도 이 시기 함께 들어왔고, 젊은 직장 여성들의 ‘2월의 부담감’도 커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의리 초콜릿’이 빠른 시일에 ‘의리 빼빼로’로 대체됐다.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에 동료들에게 빼빼로를 선물하기 시작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초콜릿 값보다 빼빼로 값이 저렴하다고 보면 부담이 좀 덜어졌다고 해야 할까.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이 아닌, 서양 명절인 ‘진짜’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는 기원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에서 결혼을 하려면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했는데, 황제의 허락 없이 남녀를 이어주다 순교한 성직자 성 밸런타인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교황 겔라시우스 1세가 서기 496년 2월 14일을 성 발렌티누스 축일로 지정한 것이 효시라는 설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순교한 성직자가 과연 누구냐는 것. 밸런타인이라는 이름의 순교자가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테리니의 주교였던 밸런타인 또는 로마의 신부였던 밸런타인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것이 다수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도 밸런타인데이와 비슷한 전통 풍습이 있었다. 시기도 밸런타인데이와 비슷한 경칩(양력 3월6일 경)이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이날, 옛날에는 사랑하는 처녀, 총각이나 부부가 은행을 나눠먹으며 사랑을 돈독히 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日本經濟新聞 2018.2.1. 朝刊
임경택 <이벤트성 외래축제를 통해 본 일본의 소비문화의 양상: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 할로윈을 중심으로>
ㅍㅍㅅㅅ 밸런타인 초콜릿의 ‘진짜’ 유래와 역사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