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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제이 Jun 27. 2021

사상누각

아파트의 역사

  ‘사상누각’.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비극이 현실로 나타났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12층 아파트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실종자가 150명이 넘는 대형 참사다. 그들 중 몇 명이나 생존했을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도 백화점이 무너져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적이 있고, 뉴욕 한 복판에서 테러로 고층 빌딩이 주저앉은 경우도 있지만, 이런 종류의 뉴스를 마주하는 태도는 도무지 학습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사고를 목도한 경험이 있다고 해도 충격이 반감되는 것이 아니다. 

  한 밤중,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고 불시에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주거지에서의 참변은, 슬픔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모두 같은 운명을 맞았다는 점에서 슬픔이 배가된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구조에 나선 사람들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은 옅어지고 포기는 빨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충격의 여운이 길어질수록 보는 사람도 우울한 감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바다 건너의 사건이라 경시할 만한 일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붕괴 사건과 이번 아파트 붕괴 사고의 차이점이라면 그 원인에 있을 것이다. 백화점 붕괴 사고의 원인은 부실 공사, 고층빌딩 붕괴 사고의 원인은 테러에 의한 외부 충격이다. 이번 아파트 붕괴의 경우는, 아직 정확한 원인을 아직 조사 중이라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지반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해안가에 지어진 탓에 건물 지하로 바닷물이 유입됐거나 지형 특성에 따라 지반이 침하됐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모래사장위에 지어진 아파트라면, 말 그대로, 사상누각인 셈이다.

  100층이 넘는 고층 건물을 짓는 시대에, 불과 12층짜리 아파트를 제대로 짓지 못해 무너졌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40년 전에 지어졌다고 해도 건축 기술만 따진다면 12층 건물 건설이 그리 난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인류가 고층의 아파트를 지어온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

  하지만 토대가 잘못됐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반이 이동하거나 침하한다는 것은, 천천히 다가오는 지진과 다를 바 없을 테니까. 모래위에 지어진 누각은 언제고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

  하루 밤 사이에 생사가 바뀐 비극에 빗댈 일은 아니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아파트도 이런 토대에 지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튼튼하지 않은 지반에 건축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아파트 값을 보면서, 과연 우리 경제는 이 정도 가격을 견뎌낼 만큼 튼튼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만약 이것이 거품이라면, 그리고 어쩌다 이 거품이 꺼지게 된다면, 우리 사회가 겪게 될 충격은 참사 못지않을 것이 라는 우려가 가끔씩 찾아온다. 괜찮다고 믿고 싶지만.         


  노동자 공동주택은 어쩌다 ‘중산층의 꿈’이 됐나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지만 아직 내 집 마련은 하지 못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갖고 싶은 집’을 물으면 대개 ‘아파트’라고 답한다. 대형 단독 주택은 현실적으로 너무 먼 꿈이기 때문일까. 한국의 주거 형태에서 아파트가 절반(48.7%, 2015년 기준)을 차지할 정도로 절대 우위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아파트’라는 개념이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한국에서 집은 곧 아파트를 의미할 정도가 됐다. 건축 연도나 면적, 입지, 브랜드에 따라 아파트 가치가 천차만별이어서 중산층으로서는 감히 입주를 꿈꿀 수 없는 곳도 있고, 반대로 서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충실히 하는 아파트도 있다. 어쨌든 평균값을 따져 보더라도 중산층에게 아파트는 ‘꿈’ 또는 ‘재산 목록 1호’다. 간혹 투기 대상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하지만.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자산에 비해 높은 가격 상승률일 것이다. 한국에서 몇 차례 급등세를 겪었던 과거 사례가 아파트에 대한 신화를 만들었다. 설령 상승 속도가 정체되거나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수중에 집 한 채는 남으니 안정적인

자산이 된다는 점도 한몫했다. 일반 단독 주택이나 땅에 비해 사고팔기가 쉬워 환금성이 높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다. 관리가 쉬운 공동 주택이라는 점이 편의성을 높이면서 가치도 함께 높였다. 주거 공간 혹은 자산으로서 아파트의 효용은 오랜 기간 유효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의 사정과 달리, 아파트가 처음 생길 때부터 중산층 주거의 대명사는 아니었다.

  건축 양식으로서의 아파트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고대 로마에는 ‘인슐라(Insula, 라틴어로 ‘섬’이라는 뜻)’라는 공동 주택이 존재했다. 아래층은 상점이고 2층부터 가정집인 구조로, 지금의 주상 복합 건물의 콘셉트와 다를 바 없다. 초기에는 10층 이상으로 지어지기도 했지만 로

마 대화재(기원후 64년) 이후 붕괴와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 7층 이하로 건축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고 하니, 줄잡아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이 아파트다. 주로 서민들과 중산층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상류층은 건물을 지어 비싼 값에 임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건물주’의 위세는 로마 시대에도 대단했다. 높은 집에서 던진 물건이나 쓰레기에 행인이 맞아 다치거나 죽는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형태의 공동 주택은 로마의 쇠퇴와 함께 점차 사라졌다. 본격적인 아파트가 다시 등장한 것이 1730년대 프랑스 파리였으니 아파트로서는 꽤 긴 암흑기를 거친 셈이다. 로마의 인슐라와 달리 파리의 아파트는 중상류층의 거주지였다. 중산층과 일부 부유층들은 넓지만 도심까지의 거리가 먼 교외의 저택 대신 전망이 좋고 사교와 생활에 편리한 도심의 고층 건물에서 거주하기를 원했다.

  19세기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유럽의 아파트는 다시 서민의 주요한 생활 무대가 된다. 산업화한 도시에서 농촌 출신의 노동자 수가 크게 늘면서 이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동 주택 도입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20세기 1·2차 세계 대전 이후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아파트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럽의 아파트 문화는 20세기 초 동양의 도시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1910년대에 처음으로 일본에 근대식 아파트가 건설되었고,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1930년대 우리나라에 진출한 일본 근로자들의 기숙사(寮)에서 시작한 아파트는 후에 민간 임대 주택으로 범위를 넓혔다. 서울과 평양, 함흥,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선 아파트는 1958년에 지어진 ‘종암 아파트’다. 지금과 같은 단지 형태를 갖춘 아파트는 1964년 건설된 ‘마포 아파트’가 처음이다. 1970~80년대는 한국 건설사에 기록될 만한 시기다. 서울 여의도와 반포, 잠실, 압구정 등 강남 개발이 차례로

진행되면서 고층 아파트들이 대규모 단지를 형성하게 됐다. 1990년 발표한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과 이에 따른 신도시 건설은 일시적으로 아파트의 공급 과잉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이른바 ‘강남 8학군’처럼 선호도가 높은 지역의 아파트 인기는 사그라질 줄 몰랐다.

  2000년대는 아파트 가격의 양극화가 뚜렷해진 시기다. 서울 일부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반면, 일부 지방의 아파트가격은 정체 수준을 면치 못했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도 아파트 값은 폭등과 정체를 반복하면서 전·월세 가격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서민들의 주거 안정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아파트 가격 상승과 양극화는 정책 입안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일시적인 대책만 난무할 뿐 누구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부는 저서 <일상의 탄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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