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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제이 Jul 10. 2021

가벼운 한 잔의 유혹

맥주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수도권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면서 저녁이면 3명 이상 모임도 제한된다.

  저녁이 사라질 지경이다. 보통 직장인이라면 퇴근 후 가볍게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는데, 당분간은 그런 기회조차 사라질 모양이다. 물론 ‘혼맥’은 가능하다지만, 자고로 맥주의 묘미는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는 데 있지 않은가. 좋은 맥주는 그 매개체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빛을 발하는 법. 그런데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간혹 출근을 하더라도 저녁 약속이나 회식을 할 분위기가 잦아들면서 맥주가 가진 ‘대화의 촉매’ 역할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물론 감염병에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맥주가 저녁을 장악한 음료는 아니었다. 때를 가리지 않고 마시던, 물을 대체했던 음료였다. 깨끗하지 않은 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없었던 시절, 발효된 맥주는 그나마 마음 놓고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마실 수 있었던 음료였다. 아침마다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하루를 시작한 여왕님도 계셨다니까.

  그렇게 위안을 해봐도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몹쓸 감염병이 어느새 우리 생활에서 참 많은 것을 통제하고 있다. 맥주 한 잔의 문제가 아니라, 안심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없는 퇴근 후 저녁시간의 문제고, 마음껏 보내지 못하는 일상의 문제다. 


한 때는 ‘가족 음료’였던 맥주

  ‘맥주’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무엇인가? 퇴근 후 동료들과 함께 즐기는 치맥? 회식 자리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폭탄주의 원료? 아니면 집에서 스포츠 중계를 보며 즐기는 여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것이든 대부분 ‘밤’ 또는 ‘저녁’과 어울리는 이미

지를 떠올리는 것이 맥주다. 맥주의 알코올 도수가 그리 높지 않다고 해도 당당한 술의 일종이다.

  그런데 300~400년 전 유럽 또는 식민지 시대 미국에서의 맥주는 아침부터 마시는 ‘식사용 음료’였다. 성인들만 마시는 것도 아니었다. 남녀노소가 함께 마시는 가족 음료로 통했다. 이런 전통은 18세기까지 이어졌다.

  물론 요즘 만드는 맥주와는 차이가 있었다. 에일(ale)이라 불러야 더 정확한 당시의 맥주는 맥아, 홉과 함께 옥수수, 감자, 순무, 호박, 돼지감자 등 온갖 식물을 재료로 썼다. 장미로 향을 내기도 했고, 자작나무, 가문비나무 같은 나무껍질과 메이플 시럽을 섞어 만들기도 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Elizabeth I, 재위 1558~1603)은 매일 아침 에일 한 주전자를 마셨다고 한다. 귀리 케이크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아침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요즘으로 치면 커피를 대신한 음료가 맥주였던 셈이다.

  100년쯤 지나 미국 독립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이 “동료들이 매일 아침을 먹기 전에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빵과 치즈로 아침을 먹으면서 한잔, 아침과 점심 사이에 또 한 잔을 마신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과거 미국에서도 맥주는 보편적인 아침 음료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프랭클린 자신은 이런 식문화를 “매우 끔찍한 습관”이라며 비판했지만 말이다.

  효과나 맛으로만 맥주를 마셨던 것 같지는 않다. 모든 사람이 취한 채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라거(larger) 맥주가 발명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맥주 맛은 썼기 때문에 그다지 맛에 끌렸던 것도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당시에는 맥주가 ‘안전한’ 음료였기 때문에 마셨을 가능성이 높다. 물이 오염되기 쉬웠던 시대, 식수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료가 와인과 에일이다. 아침 식사 음료로 맥주 대신 와인을 마시던 시절도 있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안전할 확률이 높았다. 인류가 기원전 6000년경부터 맥주를 만들어 마신 이유가 꼭 술에 취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수도 있다.

  18세기에는 맥주에 우유, 달걀을 섞어 일종의 에그녹(eggnog, 우유, 생크림, 달걀과 브랜디를 넣은 크리스마스 시즌 칵테일의 하나)처럼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포셋(posset)이라는 이름의 이 음료는 잠자기 전과 잠자리에서 일어난 직후에 주로 마셨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음식 문화 저술가인 헤더 안트 앤더슨(Heather Arndt Anderson)은 ‘18세기 의학서에는 보름달이 뜬 밤에 포셋을 마시면 경기, 발작, 간질을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기술한 바 있다.

  한편 세월이 흘러 제2차 세계 대전을 맞은 영국에서는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1874~1965) 수상이 “전방에서 적군과 대치하는 병사들이 1주일에 4파인트(약 2.3리터)의 맥주를 마실 수있도록 조치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맥주가 군의 사기를 북돋는 용도로 사용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맥주의 쓰임새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척이나 다양했다.


참고 문헌 : 린다 시비텔로 <인류 역사에 담긴 음식문화 이야기> 린

            헤더 안트 앤더슨 <아침식사의 문화사> 니케북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한 식당. 유명 인사드이 많이 다녀간 명소인데, 이 테이블에는 여배우 앤디 맥도웰이 앉았던 자리라는 표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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