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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제이 Aug 11. 2021

빙수

팥빙수는 언제부터 우리의 여름 간식이었을까

  본격적인 폭염. 여름에 어울리는 간식 중 빙수를 빼놓을 수 있을까. 몇 년 전 한 빙수 전문점이 고운 얼음결의 빙수를 내놓으면서 잠시 수그러졌던 빙수의 인기가 되살아났고, 이제는 빙수를 팔지 않는 카페가 없을 정도가 됐다. 가격도 크게 올라서 커피 두어 잔 값은 치러야 빙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 심지어 한 고급 호텔에서는 한 그릇 10만 원에 팔리는 상품까지 내놓았으니 그야말로 빙수 전성시대다.

  빙수라는 게 늘 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었던 것 같지만, 되돌아보면 그 모양새, 짜임새가 조금씩 변해왔다. 얼음위에 팥, 연유를 넣은 기본적인 빙수에 떡이나 젤리 고명을 얹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을 넣기도 했다. 아예 팥을 없애고 딸기, 망고 같은 과일을 얼음위에 쌓거나 인절미 콩가루를 얹은 빙수도 나왔다. 비싸다는 샤인머스켓을 통째로 넣어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요즘 화제가 되는 호텔 빙수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 빙수의 변신도 뭐라 탓할 바 아니지만, 그래도 빙수의 원조라면 역시 팥빙수. 변주를 무색하게 하는 뚝심의 맛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팥빙수는 언제부터 우리 여름 간식이었을까.             


  <그러나 얼음의 얼음 맛은 아이스크림보다도 밀크셰이크보다도 써억써억 갈아주는 ‘빙수’에 있는 것이다…(중략) 빙수에는 바나나 물이나 오렌지 물을 쳐 먹는 이가 있지만, 얼음 맛을 정말 고맙게 해주는 것은 새빨간 딸기 물이다. 사랑하는 이의 보드라운 혀끝 맛 같은 맛을 얼음에 채운 맛! 옳다, 그 맛이다.>     

  언뜻 요즘 나오는 과일빙수를 묘사한 것 같은 이 글은, 실은 90년 더 넘은 1920년대에 쓰인 것이다. 필자는 어린이날 제정에 기여한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 선생(1899~1931). 1929년 <별건곤>이라는 잡지에 ‘생영파(生影波)’라는 필명으로 빙수에 관한 이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는 선생이 서울에서 최고로 치는 빙수가게 소개, 딸기 물에 맹물을 타서 희석시켜 주는 가게에 관한 한탄, 여름 빙수를 제대로 즐기는 법 등이 나온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이미 빙수가 대중들의 여름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리 잡은 정도가 아니다. 1920년대 초에 서울에만 400곳이 넘는 빙수 가게가 성업했다. 방정환 선생은 생전에 하루 7~8그릇의 빙수를 먹기도 했다고 하니 대단한 빙수 애호가였던 모양이다.

  빙수는 언제부터 먹은 것일까. ‘신라 지증왕 6년(505년) 신라에서 처음으로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얼음을 저장케 하고 선박(船舶) 이용을 제정(制定)했다’는 동국통감의 기록을 인용해 일부에서는 빙수의 기원이 삼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문헌에 얼음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나오지 않을뿐더러, 얼음을 식용으로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일부 상류층에 국한됐을 것이므로 요즘 간식인 빙수와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름에 당상관(정3품) 이상 고위 관료들이 나라에서 얼음을 받아 잘게 깨서 과일 등과 함께 먹었다고 기록됐다. 하지만 이 역시 지금의 빙수와는 다르다. 화채와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빙수가 나온 것은 냉동기술이 개발된 19세기 이후의 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일본에서 냉각기를 이용해 만든 얼음을 식용으로 상용화했다. 1860년대 일본에서는 이미 얼음을 대패로 깎아 파는 빙수가게가 등장했다. 1880년대 빙삭기가 발명되면서 지금의 빙수와 같은 ‘카키고오리(かき氷)’가 크게 유행했다. 이 카키고로리는 한반도에 상륙해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1913년 서울에 제빙소가 설립된 것이 빙수 보급의 기폭제가 됐다. 

  당시의 빙수 또는 카키고오리는 곱게 간 얼음을 열대 과일(주로 대만산 열대과일), 설탕물 등과 함께 먹었던 음식이다. 지금처럼 단팥이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방정환 선생의 글에도 단팥 고명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일본에서 얼음에 식은 단팥죽을 올려 먹는 팥빙수 또는 얼음팥(氷あずき)이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다. 대략 1930년대 이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대 규슈 지방에서는 단팥 뿐 아니라 과일과 연유를 함께 곁들여 먹는 빙수가 유행했는데, 이 단팥 빙수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발전하면서 현대적인 팥빙수가 생겨났다.

  같은 제목의 가요가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여름 간식이 팥빙수다. 하지만 요즘에는 옛날식 팥빙수는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빙수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빙수에 각종 과일은 물론, 초콜릿, 치즈 같은 현대식 재료가 화려하게 얼음 위를 장식하면서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는 팥빙수가 뒤로 밀렸다. 하긴 100여 년 전 처음 빙수가 시중에 나왔을 때 얼음위에 놓였던 것이 단팥이 아니라 과일이나 시럽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빙수에서 단팥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를 두고 ‘발전적 복고’라고 불러야할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 백석 등 <100년전 우리가 먹은 음식, 식탁위의 문학 기행> 가갸날


<일상의 탄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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