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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가 꽁꽁 숨겨놓은 보석

점잖은 관광지를 아시나요?

by 후이리엔


프랑스 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즐기다 보면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특이점이 있다.

자연명소를 포함하여 많은 관광지들이 굉장히 점잖다는 점이다.


관광지가 점잖다는 표현방식이 나도 많이 어색하다. 하지만 다른 표현을 찾기가 참 어렵다.

관광지가 점잖다는 것은 해당명소를 '여기가 관광지'라고 대놓고 관리하거나, 관광객의 편의성이나 상업적 확장을 위해 많은 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유명 관광지에 가면 입구에 주차장이 큼지막하게 있고, 매표소를 지나거나 관광안내판을 지나게 되고, 곳곳에 화장실과 쓰레기통, 더 나아가 기념품 판매점들이 즐비한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물론 관광도시의 메인 해변가, 메인 광장과 같은 랜드마크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래서 특히나 자연경관과 작은 마을들이 메인인 남프랑스 지역에서 소위 말해 '점잖은 관광지'들을 많이 본 듯하다. 그러나 이곳은 점잖다 못해 꽁꽁 숨겨져 있었다.





깔랑끄 덩보(Calanque d'En Vau)는 1년 전부터 오랫동안 욕심내던 곳이다. 하지만 가는 여정이 꽤 번거롭기 때문에 번번이 최종 여행 선택지에서 낙마했다.


이곳에 가려면 중간 정도 난이도의 트래킹을 최소 1시간 이상, 왕복 3시간 정도 해야 한다. 도착하면 천국이 기다리고 있을걸 알지만, 트래킹 막바지에는 두 손 두 발을 모두 이용해 돌계단을 내려가야 한다는 후기를 보고 두려웠다.


하지만 올해야말로 남프랑스의 여름을 미친 듯이 즐기자고 다짐하고 나니 왠지 모를 용기가 생겼다. 우리는 프랑스 현지인 친구부부와 동행하는 일정으로 보물을 찾아 나섰다.

이왕 맘먹은 거 열심히 걸어보자고 호기롭게 출발했다. 트래킹화까지 구매하며 온갖 채비를 하고 왔더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은 쪼리나 슬리퍼를 신고 트래킹을 하고 있었다!


이런, 쯧쯧...

역시 다쳐봐야 장비의 소중함을 안다며 늙은이 같은 이야기를 하며 서서히 걸었다.

그런데 절벽구간 어딘가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다. 나이키 에어포스 운동화를 신고 트래킹을 하던 여성 여행객이 제대로 다쳤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발목을 아예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다들 'Madame, Bon courage(마담, 힘내세요)' 한 마디씩 전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1시간쯤 걸으니 첫 번째 목적지가 나온다. 깔랑끄 포트핀 또는 포트팡(Port Pin)이라는 곳이다. 물이 얕고 가까운 곳이라 역시나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가득하다.


내가 가야 하는 깔랑끄 덩보는 여기서 다시 30분 이상을 가야 한다기에 발길을 재촉했다. 탁 틔인 지중해를 바라보며 숨이 차는 것도 즐기며 걷다 보니, 핸드폰은 서서히 터지지 않고, 트래킹 길목에 있는 나무 표지판만 바라보며 길을 찾으며 산 꼭대기로 걸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이렇게 꽁꽁 숨겨놓은 거야?




약간 후회가 밀려들 때 즈음, 산 아래에 푸른빛이 일렁인다.

드디어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곳이다!


여러 가지 푸른빛이 겹겹이 쌓여,

하늘색이었다가 파란색이었다가

두둥실 떠다니는 카약과 수영하는

사람들의 그림자조차 수영하는 곳

자유롭게 다이빙하고 헤엄치고,

해변에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들까지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흡사 천국 같은 곳이었다.



얼른 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마음에 발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 보물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1시간을 더 헤매고 난 뒤에야 두 손 두 발 다 써야 한다는 90도 직각 수준의 돌계단 최종관문을 찾았다.


그렇게 지치고 지친 상태로 깔랑끄 덩보 앞에 섰지만, 역시 후회 따윈 없었다!


맑디 맑은 물에 몸을 뉘이고,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물을 말리고

열심히 챙겨 온 김밥과 와인을 마시고,

진한 낮잠까지 자고 나니

다시 돌아갈 길이 두려워지지만...



흠 어쩌겠는가

이렇게 꽁꽁 숨겨져 있었기에 아직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이젠 아름다운 곳들을 꽁꽁 숨겨놓는 이유를 알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올 수 있다면, 이 매력은 사라진다.

땀을 흘리고 길을 헤매면서 도착해야, 진짜로 파라다이스를 찾는 것이다.



주차장에서 내려 몇 걸음 걸으면 펼쳐지는 예쁜 바다도 매력이 있지만

내 다리로 걷고 걸어, 여정 내내 그곳을 상상하며 그리워하다 도착하는 것


그게 진짜 남프랑스가 이런 보석들을 찾기 어렵게 꽁꽁 숨겨놓는 이유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노력을 기울여야 만나볼 수 있는 점잖은 관광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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