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아이고 허리야가 절로 나온다
어릴 적의 나는 어른이 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어른만 되면, 아버지가 그려준 길 위가 아닌,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채워진 세상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마음껏, 내 마음대로 하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단어들이 주는 자유로움은 사춘기 소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달콤한 약속과 같았다.
하지만 막상 어른의 문턱을 넘고 나서야 깨달았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가 아닌,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까르르 웃어대느라 세상 무너지는 줄 모르고 뒤로 넘어가는 사춘기 소녀들을 보았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면서 그들의 맑은 웃음 속에 아직 세상의 무게를 모르는 꼬마였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저 하루하루를 당연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몸의 통증과 마주했다. 부모님처럼 몸을 쓰는 일을 해본 적도 없고 너무 편안하게 살아왔는데 오십견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해할 수 없는 병명이자 나이 탓인가 싶었다. 세월의 흔적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기는 의사쌤에게 목 통증도 덧붙여서 왔다고 또다시 병원을 찾았다. 물리치료를 받는 내내 엄습하는 욱신거림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나는 고작 이것도 아프다고 엄살인데, 매일같이 "아이고 허리야, " "아이고 머리야"를 입에 달고 사시던 부모님의 세월의 통증은 대체 얼마나 깊고 무거웠을까 싶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습관적인 탄식처럼 들렸다. '어떻게 저렇게 매일 아플 수 있을까?' 의아해만 했을 뿐이다. 내가 그 통증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감히 아픈 이를 위로할 수도, 그 고통의 깊이를 짐작할 수도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은 이렇게나 어리석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의 통증을 겪어내고 계신 부모님 앞에서, 나의 작은 통증을 호소하며 "아이고 허리야" 하고 있던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 부끄러운 깨달음은 부모가 되고 나서야 찾아왔다. 세상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위로사랑은 없다는 것을. 내 고통보다 자식의 작은 기침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내 안위보다 내 자식이 먼저인 순간을 경험했을 때, 비로소 부모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되었다.
그것을 알았을 때의 창피함이란. 나를 키우느라 그토록 헌신하신 부모님께 당연히 위로의 사랑을 드려야 할 내가, 자연스레 내리사랑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게 당연한 거야. 네 엄마도 정신이 온전할 때는 너네밖에 몰랐어." 그 말씀 속에서 나는 부모님의 깊은 이해와 헌신, 그리고 묵묵히 받아들인 세월의 무게를 느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옭아매는 굴레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사랑의 깊이를 이해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특히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워본 사람만이 배울 수 있는 경험이다. 열 번을 읽어도 한번 가서 만져보고 보는 게 최고라고 경험의 중요성도 이해했다. 오늘 몸의 통증을 통해 나는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그분들의 곁에서 나도 조금씩, 제대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 모든 깨달음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함을 느낀다. 제발 부디 오래오래 함께 계셔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