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통증

어른이 되면, 아이고 허리야가 절로 나온다

by 민선미


​어릴 적의 나는 어른이 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어른만 되면, 아버지가 그려준 길 위가 아닌,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채워진 세상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마음껏, 내 마음대로 하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단어들이 주는 자유로움은 사춘기 소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달콤한 약속과 같았다.

​하지만 막상 어른의 문턱을 넘고 나서야 깨달았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가 아닌,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까르르 웃어대느라 세상 무너지는 줄 모르고 뒤로 넘어가는 사춘기 소녀들을 보았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면서 그들의 맑은 웃음 속에 아직 세상의 무게를 모르는 꼬마였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저 하루하루를 당연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몸의 통증과 마주했다. 부모님처럼 몸을 쓰는 일을 해본 적도 없고 너무 편안하게 살아왔는데 오십견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해할 수 없는 병명이자 나이 탓인가 싶었다. 세월의 흔적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기는 의사쌤에게 목 통증도 덧붙여서 왔다고 또다시 병원을 찾았다. 물리치료를 받는 내내 엄습하는 욱신거림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나는 고작 이것도 아프다고 엄살인데, 매일같이 "아이고 허리야, " "아이고 머리야"를 입에 달고 사시던 부모님의 세월의 통증은 대체 얼마나 깊고 무거웠을까 싶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습관적인 탄식처럼 들렸다. '어떻게 저렇게 매일 아플 수 있을까?' 의아해만 했을 뿐이다. 내가 그 통증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감히 아픈 이를 위로할 수도, 그 고통의 깊이를 짐작할 수도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은 이렇게나 어리석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의 통증을 겪어내고 계신 부모님 앞에서, 나의 작은 통증을 호소하며 "아이고 허리야" 하고 있던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 부끄러운 깨달음은 부모가 되고 나서야 찾아왔다. 세상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위로사랑은 없다는 것을. 내 고통보다 자식의 작은 기침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내 안위보다 내 자식이 먼저인 순간을 경험했을 때, 비로소 부모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되었다.

​그것을 알았을 때의 창피함이란. 나를 키우느라 그토록 헌신하신 부모님께 당연히 위로의 사랑을 드려야 할 내가, 자연스레 내리사랑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게 당연한 거야. 네 엄마도 정신이 온전할 때는 너네밖에 몰랐어." 그 말씀 속에서 나는 부모님의 깊은 이해와 헌신, 그리고 묵묵히 받아들인 세월의 무게를 느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옭아매는 굴레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사랑의 깊이를 이해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특히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워본 사람만이 배울 수 있는 경험이다. 열 번을 읽어도 한번 가서 만져보고 보는 게 최고라고 경험의 중요성도 이해했다. 오늘 몸의 통증을 통해 나는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그분들의 곁에서 나도 조금씩, 제대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 모든 깨달음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함을 느낀다. 제발 부디 오래오래 함께 계셔달라고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