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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 센터 선생님 감사해요

아이가 커나갈수록 어렵다

by 민선미

긴 추석 연휴 전, 둘째가 다니는 중학교의 위(Wee) 센터 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아침 8시 반까지 위센터로 오셨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상하게도 수신 전화기에 학교번호가 뜨면 심장이 쿵하고 겁부터 난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아이의 담임선생님께서도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하셔서 내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빠르게 뛰는 것을 숨기면서 전화를 받았다. 도대체 아이는 어쩌다가 위센터 상담실에 간 것일까? (워낙 소극적이고 만사 귀찮아해서 해맑게 상담실을 찾아갈 아이는 아니었을 텐데...) 여러 번 생각해도 그럴 아이가 아닐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튼 이 사실을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면 아는 체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모르게 다녀와야 할지부터가 심각하게 고민되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이는 하교하자마자 위센터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학교 입학한 이후로 처음 가본 곳인데 분위기가 좋았고 상담선생님이 참 친절하셨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이어서 전화받은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 가다 기회를 놓치고 이미 아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은 상태였다. 아~. 이를 어쩐담. 노크를 하고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었다. 일단 남편한테 상의를 해보기로 했다. 나보다 훨씬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니 기다려보기로 했다. 한 시간을 골똘히 기다려도 안 되겠다 싶어서 전화를 걸어 속내를 털어놓았다. 남편은 퇴근 후에 집에 가서 얘기를 해보자고 했다.


무슨 정신으로 저녁을 해서 큰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저녁상을 차렸는지도 모른다. 워낙 숙련돼서 저절로 했을지도. 머릿속에는 계속 어떻게 해야 하는 생각뿐이었다. 남편은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으니 나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라고 해서 일단 그렇게 시도했다. 사연 인즉은 그랬다. 자주 위센터에 가는 친구가 그날따라 같이 여러 명을 거느리고 간 것이었다. 그중에 우리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고 아이는 상담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에 딱 걸려들었던 것이었다.

"학교에 다니기 싫어요. 왜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아이는 말했고 자기가 원하는 일이 명확하기에 당당하게 말했던 모양이다. 학교 측에서는 학교에 다니기 싫다는 포인트와 규칙이 너무 많다는 둥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를 불러서 아이의 상태를 알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으니 알릴 의무가 있어서 모셨다고 했다. 혹여나 자퇴라도 할까 봐 걱정이었는지 급한 마음에 일찍이 학교로 나오라고 했던 것이다.

상담실에 가니 상담선생님과 학년부장님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이른 시간에 아이들이 수업하는 와중에 학교에 가니 교실 안에 수업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큰 아이를 키웠어도 학교에 불려 가기는 처음이었다. 다른 때는 내가 자발적으로 총회에 참석하거나 학부모 교육이 있을 때에 가는 것이 이렇게 상황이 다르다니 씁쓸했다. 더한 경우도 있는데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일단 학교에 상담을 다녀와서 전문 상담센터를 다녀보는 게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보통 아이들처럼 중간만 하면 되는데 아이는 초4 때부터 모든 학원을 그만두고 미술만 다녔다. 미술도 오래 다닐 수 없었다. 모든 학원이 그렇듯 성과를 내야 하는데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있으니 부딪히기 시작하면서 그 학원도 그만두었다. 언제부터 학생이 학원이 필수였나 생각하면서 속으로는 학업에 뒤쳐질까 마음 졸였지만 내려놓았다. 그래서 사람은 만들어야 하니 학교 정규과정만 잘 마치자고 마음먹었다. 아이는 학교에서의 생활도 가식적이었다.


그냥 맞춰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 사실을 상담선생님께 모조리 다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상담이 길어져서 다음 수업에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속내를 쏟아냈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워낙 자기의 관심분야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학교에 없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무시했었다. 그것이 쌓였는지 아이는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속은 검게 멍들고 지푸라기처럼 엉겨있었구나를 알았다. 내가 해결해주지 않아서 일이 커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어찌해야 할지 망막했다. 사람이 당황하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고 상담실에서 2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고 나와서 온종일 나사 빠진 사람이 되었다.


일단 상담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상담센터를 검색하고 한 군데씩 전화를 해보았다. 대부분 상담이 밀려있었고 나는 하루라도 빨리 상담을 받아보고 싶었다.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많이 알려야 한다고 지인에게 물어보았더니 다행히도 가족상담센터를 소개받았다. 당장 문의를 했고, 아이의 나이가 청소년에 해당되어 청소년상담센터로 연결되었다. 그날 예약하고 3주를 기다렸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이른 오전부터 두통이 찾아오더니 자꾸 바닥에 눕고 싶게 만들었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생각하기 싫었다. 왜 엄마들이 심란한 일이 생기면 머리에 하얀 띠를 매고 누워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심정을. 모두 내가 해봐야 내 것이 된다는 말을 마음에 새겼다. 오후 4시에 예약한 상담 시간이 다가올수록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내 어리고 소중한 아이를 데리고 상담을 가야 한다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이런 일이 내게도 오는구나. 별일이 아니라고 백번 되뇌며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상담 결과로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걱정되고 불안하고 두려웠다. 내 품에 있을 때가 안심이 되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엄마를 백번도 넘게 부르면서 내 꽁무니만 쫓아다닐 때가 좋았다. 사실 좋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이게 나이 먹어간다는 증거일 게다.


상담실 벽면에 자신의 목표를 하나씩 적어놓았다.


당연히 아이를 낳으면 자주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게 채워주고 이제는 개별적으로 놓아줘야 하는데 준비가 안된 건지 계속 소유하고 싶은 건지 꼬치꼬치 캐묻게 된다. 아이의 덩치가 나만큼 커졌는데 아직도 엄마마음은 자라지 않고, 마냥 물가에 내놓은 아기로 보인다. 눈에 안 보이면 불안해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내뱉은 말이 아이에게는 잔소리일 뿐이었다.



아이의 상황을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이 있다. 엄마인 나를 대면대면하는 것에 속상했고, 나 혼자 그 횟수를 카운팅 하다가 참지 못하고 버르장머리 없이 행동을 한다며 분노하고 급발진했다. 생각해 보면 아이상황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자기는 잘못한 게 없는데 엄마는 소리만 지르니 화날 일인건 사실이다. 나 혼자 거슬렸을 테니까. 내 하루의 대부분을 거실과 주방이 붙어 있는 식탁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 있다. 그곳에서 책도 보고, 글도 쓰고 내 책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찌 보면 아이들에게는 나를 감시관이나 감독관이 앉아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사춘기와 갱년기가 맞물렸다. 나의 갱년기 증상으로 감정기복이 심해졌고, 몸에서 아우성거리는 통증과 싸우기도 바빴는데 나를 탓하기보다는 자꾸 아이들 탓을 하고 싶었나 보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다독거려주고 싶은 만큼 아이들은 더 멀리 내 곁에서 도망쳤다. 줄곧 나가던 사무실까지 쉬면서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나를 본체만체하니 존재를 상실한 느낌이었다. 내가 챙겨주는 간식을 거부했고 두 아이는 각자의 방문을 꼭 닫고 기척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텅 빈 거실이 어찌나 넓어 보이던지 예전 작은 집에서 살 때는 큰 집이 그렇게 부러웠다. 거실은 남편차지고 주방은 내 차지다. 때가 되어도 둘 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으니 아무리 크게 소리 질러도 나오지 않았다. 매번 식사시간에 각방으로 노크를 하고 들어가서 어깨를 툭 쳐야만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우리 부모님도 나를 키워주셨을 텐데 업보라며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을 잘 모르니 나는 안 그랬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튼 상담실에 가자고 어렵사리 말했는데 호의를 비춰주어서 상담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 가보는 장소에 어색한 아이는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면서 다른 교복 입은 학생을 보면서 안심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받을 수 있는 방문상담을 선택했는데 처음 센터를 찾아와 보니 아이는 뜻밖에도 센터상담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엄마인 나는 일주일마다 아이를 픽업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감사했다. 최고의 상담사는 엄마라는데 그걸 너그럽게 대해주지 못하니 어쩔 수 없었다. 저녁 식사 후에 남편에게 심리상담을 공부해야겠다고 말하니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동안 그렇게 육아서와 상담책을 읽어도 내 자식은 내 뜻대로 못하는 게 자식농사라고 남편은 남의 얘기하듯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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