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이 상처가 되는 이유
따르릉~~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옛말이었다.
오랜만에 걸려온 반가운 이름이 전화기 액정에 나타났다. 기쁜 마음으로 얼른 받아 들었다. 연락하지 않아도 늘 마음에 두는 친구였다. 떨리는 목소리만으로 뭔가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빨리 얼굴을 보기로 약속했다.
가을이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낙엽은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처럼 그 서늘한 기분이었다. 따뜻함이 사라지고 차가움이 밀려오는 그 순간, 내 앞에 앉은 친구의 표정도 그랬다.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는 손끝이 차가워 보였다. 어느 곳에 시선을 두지 못하고 맞잡은 두 손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초조해하는 눈빛을 본 순간 친구가 힘든 이야기를 꺼낼 거라 짐작했다. 나의 직감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았기에 초조했다.
친구의 울분 섞인 하소연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뭐라도 해줘야 해'라는 목소리가 울렸다. 그 침묵이 견딜 수 없어서, 나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럴 땐 말이야, 이렇게 한번 해봐."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진심으로 조심스레 내 경험까지 섞어가며 말했다. 정말로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 말이 떨어질 때마다 친구의 눈빛은 더 공허해져 갔다. 마치 따뜻한 말로 겨울을 막으려는 것처럼, 내 조언들은 친구의 추위를 녹이지 못했다. 그때,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그런 얘기, 지금은 잘 안 들어와."
그 한마디가 나를 멈춰 세웠다.
나는 위로한다고 했지만, 결국 내 경험만 늘어놓은 거였다. 내가 아는 방법, 내가 겪은 일, 내가 생각하는 정답을 말했다. 친구는 조언이 아니라 곁을 원했는데, 나는 혼자 답을 찾느라 바빴다.
조언은 위험하다고 그렇게 책에서 읽었거늘 아차 싶었다. 조언에는 '나'의 경험이 담기게 된다. 하지만 위로에는 '너'의 감정만 담겨야 한다. 조언은 머리로 하지만, 위로는 서툴지만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 차이를 깨닫는 순간 전에 읽었던 글귀가 떠올랐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를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_칼로저스
내가 아는 방식으로 남의 마음을 재단하려 할 때, 진짜 공감은 멀어지기 마련이다. 공감은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단순함을 지켜내는 게 가장 어렵다. 침묵을 함께 견디는 일은 조언보다 훨씬 큰 용기를 요구한다.
그날 이후, 나는 조언을 삼키는 연습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무엇을 말해줘야 할까'보다 '어떻게 들어줄까'를 먼저 생각한다.
"그랬구나."
"네 마음이 정말 힘들었겠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다. 조언은 방향을 알려주려 하지만, 공감은 그냥 그 자리를 지켜주면 된다. 사람이 지쳐 있을 때 필요한 건 누군가의 정답이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평안해지고 괜찮아질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마음이다.
"그랬구나" 한마디는 침묵 속에서 건네는 가장 큰 위로였다. 너의 고통을 내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알아봐 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