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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심 - 수능날이면

이해인 수녀의 희망은 깨어있네

by 민선미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 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에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말을

거역하고 싶었다.


그러나 앞선 어른들의

지혜는 해답이었다.


한 번뿐인 인생이

순탄치 않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엄마처럼 절대 살지 않겠다'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인생 드라마를 마치 내가 하나씩 증명해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에게는 마음이 병들고,

몸이 병들어 고통받으면서도

자신의 몸뚱어리가 닳고 닳아

없어지는 줄도 모르고 희생하는 게

보람이고 기쁨이었다.


그게 바로 엄마라는 것을

나는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닫게 되었다. 아무리 배워도

스스로 경험을 해봐야 알게 된다.


오늘 같은 수능날이 나는 가장 싫다.

아무리 잊고 싶도 몸부림쳐도

절대 잊히지 않는 옛 추억이 자꾸 떠오르니까.


찹쌀떡, 합격엿, 휴지, 송곳이

웬 말이냐.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내가 수능 보던 날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고사장 앞으로 배웅하고 마중하는 사람들 틈에 낄 수 없는 나였다.



온 가족이 응원해도 부족한데 나는 기어코 아버지가 반대하는 대학에 가겠다고 은행을 그만두고 재수학원에 다니며 대입을 준비했다. 나 홀로의 싸움이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응원해 주는 가족은 없었다.


아마 엄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속이 숯검댕이처럼 탔겠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가 무서워서 집안의 평화를 위해 태연한 척 연기했을 것이다.


예전 수능날은 정말 추웠다.

에서 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한파였다.

어쩌면 마음이 추우니 더 춥게 느껴졌을지도. 청란여고가 수능 고사장이었는데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내려서 산 등성이에 있어서 올라가다 쓰러지는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저질체력이었는데.

문제는 시험이 끝나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산 아래로 내려올 때가 더 무서웠던 기억이다. 그날 후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아무도 나를 응원하지도 않았기에

스스로를 응원하며 독해져야 했다.

지금도 나는 문제의 상황에 닥치면 피하기보다는 어떠한 결심을 내린다.


처음에는 억울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내가 선택하고 노력하고 채워나가는

보람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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