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에 있는 존덕정 내부에 새겨진 <만천명월주인옹 자서>는 정조가 쓴 글이다. 만천명월주인옹이란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정조는 모두를 끌어안는 너그러움을 말한다.
"근래 와서 다행히도 태극, 음향,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그리하여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데 쓴 것이다.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중히 여겨 양쪽 끝을 잡고 거기에서 가운데를 택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서울 1p.301
나는 아래의 글을 읽으면서 발췌한 이유가 있다. 정조는 계몽군주이자 개혁군주였다. 그의 자서를 읽으면 정조가 통치 철학을 세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느껴볼 수 있어 함께 읽고 기록하고 싶었다.
나는 물과 달을 보고서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우친 바 있다.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숫자는 1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1만 개면 달 역시 1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론 하나뿐이다.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나가고 무리 지어 쫓아다니며 가는 것인지 오는 것인지 모르는 자도 있었다. 모양이 얼굴빛과 다르고 눈이 마음과 다른 자가 있는가 하면 트인 자, 막힌 자, 강한 자, 유한 자, 바보같이 어리석은 자, 소견이 좁고 얕은 자, 용감한 자, 겁이 많은 자, 현명한 자, 교활한 자,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레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 모난 자, 원만한 자, 활달한 자,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 말을 아끼는 자, 말재주를 부리는 자, 엄하고 드센 자,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 명예를 좋아하는 자, 실속에만 주력하는 자 등등 그 유형을 나누자면 천 가지 백 가지일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정조는 이 모두를 끌어안는 너그러움을 말한다.
내가 처음에는 그들 모두를 내 마음으로 미루어도 보고 일부러 믿어도 보고, 또 그의 재능을 시험해보기도 하고 일을 맡겨 단련도 시켜보고, 혹은 흥기시키고 혹은 진작시키고 규제하여 바르게도 하고, 굽은 자는 교정하여 바로잡고 곧게 하면서 그 숱한 과정에 피곤함을 느껴온지 어언 20여 년이 되었다.
근래 와서 다행히도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그리하여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래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쓴 것이다. 그의 당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 여겨 양쪽 끝을 잡고 거기에서 가운데를 택했다.
트인 자를 대할 때는 규모가 크면서도 주밀한 방법을 이용하고 막힌 자는 여유를 두고 너그럽게 대하며, 강한 자는 유하게 유한 자는 강하게 대하고, 바보 같은 자는 밝게 어리석은 자는 조리 있게 대하며, 소견이 좁은 자는 넓게 얕은 자는 깊게 대한다. 용감한 자에게는 방패와 도끼를 쓰고 겁이 많은 자에게는 창과 갑옷을 쓰며, 총명한 자는 차분하게 교활한 자는 강직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어서 정조는 신하들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대하여 말했다.
술에 취하게 하는 것은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고, 희석하지 않은 순주(醇酒)를 마시게 하는 것은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며, 모난 자는 둥글게 원만한 자는 모나게 대하고, 활달한 자에게는 나의 깊이 있는 면을 보여주고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에게는 나의 온화한 면을 보여준다. 말을 아끼는 자는 실천에 더욱 노력하도록 하고 말재주를 부리는 자는 되도록 종적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며, 엄하고 드센 자는 산과 못처럼 포용성 있게 제어하고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는 포근하게 감싸주며,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내실을 기하도록 권하고 실속만 차리는 자는 달관하도록 면려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을 배우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달이 물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밝은 것과 같다.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춰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태극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만천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내가 머무는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이라고 써서 나의 호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년(1798) 12월 3일이다.
정조의 철학이 밝게 드러나는 천하의 명문이다. 정조는 만 가지를 생각하고 만 가지를 고민을 하면서 지냈던 왕이다. 그것이 나라를 통치하는 분의 마음이고 자세였다. 현 정치를 하는 분들이 떠오른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국민들은 생각하지 않았던 파렴치한 사람들은 죄를 받아야 마땅하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나 아닌 타인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하고, 자신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