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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심이었는데 서운한 마음

섭섭함은 기대에서 생긴다

by 민선미


"너는 착해서 탈이야."


그 말을 지금도 듣게 된다. 예전엔 그저 웃으며 넘겼다. 사람을 쉽게 믿고 따르는 나를,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첫인상만으로 의심 없이 마음을 열고, 먼저 손 내밀고, 함께 웃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주변에서는 사회생활을 안 해서 그렇다, 못된 사람에게 당해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쉽게 말해버린다. 그래도 나는 참으면서 삭혔다.


나는 그런 내가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마음을 가진 내가 귀하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건넨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편안함이 아니라 '틈새'였다는 것을 알았다. 선의는 종종 경계 없는 허용처럼 소비되었고, 호의는 당연한 것으로 바뀌었다. 어려서부터 사람을 유난히 좋아했고,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누고, 사소한 하루를 공유하는 것이 우정의 전부라고 믿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온도로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남은 건 섭섭함이었다.


섭섭함이라는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섭섭함은 기대에서 생긴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조금 억울했다.

내가 기대를 한 걸까? 아니, 그냥 마음을 준 것뿐인데.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는 알았다.

"너도 나처럼 진심일 거라 믿고 싶었다." 그게 바로 나의 기대였다. 그래서인지, '착하다'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싫었고, 그 말을 듣는 것조차도 불편해졌다.


예쁘게 포장된 칭찬처럼 들리면서도, 어딘가 나를 순진한 사람으로 묶어두는 말 같았다. 상처받을 때마다, 나는 다짐했다. 이제는 강해져야지. 단단해져야지. 더는 그렇게 휘둘리지 말자고 다이어리에 매일 선언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았다. 마음이 단단해졌다고 믿을 때마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또 마음을 열고, 어느새 다시 누군가를 믿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무리 다양한 책도 읽고, 마음공부도 했지만 내게 부족했던 건 지식이 아니라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한동안은 나를 이용한 사람들을 탓하며 그게 세상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되었다. 어른의 관계는 때로 감정이 아니라 거래의 무게로 굴러간다는 사실을.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억울함보다 먼저 작게 중얼거린 한마디가 있었다. "아, 그렇구나."  

그 후로 나는 사람이 싫어진 건 아니지만, 예전처럼 쉽게 마음을 열지는 않게 되었다. 여럿이 함께하는 활동에서 나도 모르게 행동도 느려졌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워졌다. 누군가는 그걸 변했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저 나를 지키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그런 나를 보며 묻는다.

'예전보다 따뜻함이 줄어든 건 아닐까?' 그 질문을 할 때마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조용히 말한다.

"아니야. 너는 사라진 게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거야." 그래도 여전히 고민은 남는다.  


나는 진심을 줬고, 때로는 이용당했고, 여러 번 실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를 믿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 진심을 건네도 되는 사람일까? 아니면 이제는 마음을 접어야 하는 걸까?


그리고 마지막 질문 하나.  

그래도 믿고 싶어 하는 이 마음은, 나에게 약함일까? 아니면 지워지지 않는 나의 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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