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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1> 라스콜니코프의 죄책감이라는 형벌

by 민선미

지난주에 이어 새온독에서 죄와 벌을 읽고 있다. 워낙 유명한 고전에다 벽돌책이기에 독서모임에서 4주에 걸쳐서 완독하기로 했다.


죄와 벌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를 읽으면서 꼭 읽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독서모임에 책을 추천하고 25년 하반기 마지막으로 죄와벌 1, 2 가 배정되었다. 내년에는 아마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게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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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선한 목적으로 살인을 한다면 악한 수단은 정당화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주장을 펼치는 라스콜니코프는 정말 양심도 없어 보인다. 청춘의 독서에서는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부류의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고전은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재독을 하면 새로운 시선을 발결할 수 있고 보이지 않던 인물에 대한 생각도 확장되기에 너도나도 고전을 읽고 매력에 빠지게 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은 제목만 보면 범죄와 그것에 따른 법적 처벌을 다룬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재판정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즉 양심이 부여하는 형벌에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라스콜니코프는 23세의 전 학생이자 가난한 청년으로 이름이 여러 개로 듣던 대로 이름 지옥이었다.

라스콜니코프(로지온, 로쟈, 로젠카, 로지카, 로지엔키, 로마노비치(로마느이치)


라스콜니코프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다. 그는 “매우 잘생기고, 평균 키보다 크며, 날씬하고 탄탄하며, 아름다운 짙은 눈과 갈색 머리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음..... 그렇다...... 모든 것이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데 오로지 겁을 먹은 탓에 모든 것을 놓쳐 버린다..... 이것이야말로 공리이다... 궁금하군.,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뭘까? 새로운 걸음, 자기 자신의 새로움 말을 그들은 제일 두려워하지..... (중략) 진지는 무슨 진지. 그냥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환상에 불과하다.


p.12~13


외모만큼이나 그는 지적이고 섬세하며, 사상적으로 자신을 ‘비범한 인간’이라 여긴다. 그에게 범죄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사상적 실험이었다. 그는 “평범한 도덕은 평범한 사람을 위한 것이며, 위대한 사람은 선을 위해 악을 저지를 권리가 있다"라고 믿는다. 그 살인은 그의 철학이 실현 가능한지 시험하는 방식이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연구한 만큼 자신 스스로도 마음에 들어 했다.




지금은 심지어 자신의 기획을 시험하러 가는 길이었고 걸음을 뗄 때마다 그의 흥분은 점점, 점점 더 고조되었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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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죄가 아니라는데, 이건 진리입니다. 술타령이 미덕이 아니라는 것도 내 잘 알고 있지만, 이건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진리지요. 하지만 극빈이라면, 형씨, 극빈은 죄랍니다. 그냥 가난한 정도라면 아직은 타고난 감정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극빈한 상태라면 아무도 절대 그럴 수 없지요. 극빈하면 지팡이로 쫓아내는 것도 아니고 숫제 사람들 무리에서 빗자루로 싹 쓸어내지요. 괜히 더 모욕을 주려고요.


p.28~29


라스콜니코프는 단일한 얼굴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차갑고 냉정하며, 타인을 계산적으로 대하는 반사회적 인물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길거리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돕고, 마주친 이들의 불행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리는 자비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엄마가 보내준 돈을 마르멜라도프가 만취상태로 마차에 치여 치명상을 입었을 때 도와주고 가족들 곁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도와준다. 특히 어머니가 빚을 내 보내준 학자금인 25루블을 장례비용으로 주는 마음은 선한 마음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주인공의 양가성은 그의 사상과 존재의 균열을 보여준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충동적 자선 행위를 반복하고, 세상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면서도 인간의 비참함 앞에서는 무너진다.


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사회적 구조, 빈곤, 소외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스스로 만든 허무주의적 세계관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국 가장 벼랑 끝에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범죄 이후 라스콜니코프의 삶은 고열에 시달리며 불안에 휩싸여 금방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다.


그는 법적 처벌을 두려워하기보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심판에 압도된다. 죄책감은 그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그는 심리적·신체적 붕괴에 가까운 증상을 보인다.


《죄와 벌》은 그래서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신이 만든 사상, 자만, 고독, 죄책감과 싸우며 인간다움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라스콜니코프의 범죄는 그 자체보다, 그 이후의 고통과 붕괴, 그리고 고백을 통해 이루어진 회복이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도스토옙스키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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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인간을 심판하지만,
양심은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렇기에 《죄와 벌》은 범죄의 기록이 아니라, 한 인간이 죄를 통해 비로소 인간이 되어 가는 이야기다. 사람의 심리상태에 대한 묘사나 외적으로 풍겨지는 인물 묘사가 너무 자세해서 텍스트로만 읽어도 그림이 그려지는 형국이었다.



대체로 누구든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대할 때 차근차근 신중을 기해야 하고 나중에 가서 바로잡고 씻어 내기가 극히 힘든 과오를 범하거나 편견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_라스콜니코프의 엄마가 아들에게 쓴 편지

라스콜니코프의 엄마가 아들에게 쓴 편지 일부의 문장이다. 여동생 두냐가 스비드리가일로프 씨 일가에서 받은 수모와 모욕을 받았던 일을 상세히 알려주면서 두냐의 신랑감으로 표트로 페트로비치라는 사람에 대해 좋게 설명하는 부분이다. 엄마로서 조금 이상한 부분이 많게 느껴지는 편지라서 라스콜니코프는 편지를 읽고 나서 얼굴은 눈물에 젖어있었지만 힘겹고 초조하고 심술궂은 미소를 띠며 입술이 씰룩거렸다.




★ 아직 읽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기록하고 싶은 마음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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