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있어서의 문학
내가 처음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었던 책은 한국의 고전문학이었다. 옛날 이야기들과 옛날 사람들의 상상력이 담긴 고전문학을 읽는다는 건 깨어있는 상태에서 꿈을 꾸는 것처럼 황홀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공주님과 왕자님의 사랑이야기들을 다룬 저 먼 나라들의 동화들보다 선(善)을 중시하고 인간의 탐욕과 집착으로 비롯된 파멸을 그리는 고전문학은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 특히 『바리데기와 당금애기』 이야기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의지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희생정신에 대하여 늘 신선한 깨우침을 주고있다.
이후, 10대에 들어서며 나는 소설과 수필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유는 어릴 적과 비슷했다. 내가 쉽게 경험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존경하는 이들의 삶과 머릿속을 탐방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종교가 없었던 나였지만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 는 글이 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계기였다. 『오두막 편지』 속 한 구절인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쉬어가도 괜찮다.”는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빠르게, 그리고 남들보다 앞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잠시 멈춰 서는 법을 잊은 나에게 그 문장은 조용한 안식이었다. 법정 스님은 자연과 사람, 그리고 마음의 관계를 통해 ‘비움’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이는 글이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최초의 순간이었다. 이후로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인 동시에 세상과 더 깊이 연결되는 일이 되었다.
중학교 시절을 지나며 문학에 사람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17살 생일에 친구가 선물해준 이병률 작가의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은 내게 ‘시’라는 새로운 세계를 소개해주었다. 이전까지 ‘시’는 그저 학교 수업시간에만 배우는, 분석함으로써 작가의 메시지를 파악해야하는, 목적이 있는 ‘과제’의 느낌이 큰 장르였다. 그런데 이병률의 시는 내가 사랑하는 자연을 노래하면서 혼자여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주었다. 법정 스님의 글이 나를 멈추게 했다면, 이병률의 시는 다시 나를 걸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의 시를 통해서 내가 사랑하는 향기를 맡을 수 있었고,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었다. 이병률의 시가 가진 따스함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삶의 조각들을 은유로 엮어내는 섬세한 손길에 있는 것만 같았다. 때로는 바람처럼 스치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조용히 품어냈다. 시는 짧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계절 그리고 시간과 같은 삶의 풍경이 담겨 있다. 그에 담긴 마음이 독자의 경험과 맞닿을 때, 시는 작가와 독자를 잇는 다리가 된다. 그래서 나는 시를 ‘작가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시는 삶의 진실을 직접 말하지 않아도 그 여백 속에서 스스로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단 한 줄의 문장 속에 한 세계가 녹아 있고 그 함축이 만들어내는 울림은 때로 긴 소설보다 더 깊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단어 너머에 숨어 있는 온기를 찾으려 노력한다. 내게 시는 언어의 예술을 넘어, 마음과 마음이 조용히 만나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후, 17살 가을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다. 거창한 작품을 쓰고 싶다기보단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금 느끼는 감정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거제도라는 섬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늘 나를 품어주었던 바다와 자연은 정말 힘들고 아픈 순간에도 아무 말없이 조용히 나의 울음을 삼켜주고 파도와 함께 웃음을 되돌려주었다. 이것이 나만의 시 모음집이 (『바다와 나: 10대의 이야기』-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파도가 덮친 20대의 마음』) 탄생하게 된 계기이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땐 어떻게 시를 써야할 지 꽤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 글을 쓰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만리향의 냄새, 새벽 흙냄새, 뒷산의 새소리, 친구들의 웃음소리들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단어들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러나 내가 끄적인 단어들이 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시는 어떤 것을 시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 등이 내게 어렵게 느껴졌다.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자 한 나만의 노력은 바로 여러 시대의 시인들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윤동주의 시를 통해서는 내면을 성찰하는 법을, 그리고 나태주의 시에서 일상의 따뜻한 순간을 배웠다. 시대를 빛냈던 시인들의 시를 읽는 일은 점차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되었다. 시인들이 각자의 시대 속에서 자신을 표현했던 것처럼, 나 역시 지금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며 나만의 언어와 추억을 기록하고 싶었다. 시를 읽으면서 동시에 시를 쓰는 일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처음 시를 쓰고자 했던 마음 그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사랑하는 순간을 기록하고자 하니, 어느새 내 주변의 풍경과 사람들은 시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의 눈빛과 목소리, 엄마의 손길, 익숙한 골목의 냄새들이 한 편의 시로 남았다.
그렇게 이것저것 끄적이며20살이 되어갈 무렵, 모인 시들을 모아놓고 보니 그를 주인공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의 일상 속에서 내 시가 작은 미소나 기억이자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보람이자 영광이 될 것만 같았다. 『바다와 나: 10대의 이야기』는 열일곱부터 열아홉까지의 기록인 동시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마음의 편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열여덟의 막바지에 썼던 “서로의 향기”라는 시는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전교회장이 졸업앨범 한 페이지에 있는 축하의 글에 시 일부를 인용하면서 동창들 모두의 졸업앨범에도 나의 시가 실렸던 일도 있었다.
‘잠시 헤어지더라도 서로에게 남아있는 향기는 머지않아 서로를 다시 만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때, 낯설지 않은 향기를 품고 그대, 내게로 와 꽃이 되어주오.’
친구는 내 시를 꼭 졸업앨범에 실어 함께 추억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내게 인용해도 되는지 물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병률 작가의 시를 통해 느꼈던 감정의 이어짐을 내가 누군가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 경험은 시의 힘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고, 내가 시를 더욱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시를 쓰는 것이 10대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면, 공연예술은 그 이후의 나를 성장시킨 또 다른 세계였다. 특히 나는 어렸을 때 거제시소년소녀합창단에서 노래를 하면서 무대와 친해졌고 내가 섰던 무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과 연극, 오페라를 관람하며 자연스레 친숙함을 느끼고 또 사랑하게 되었다. 극 예술들은 어릴 때 내가 고전문학과 소설을 사랑했던 것처럼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와 인물들의 삶을 직접 시각적으로 보여줬고, 배우들의 호흡과 조명, 음악, 무대미술이 하나로 어우러져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내가 시를 통해 삶의 감정을 들여다보았다면, 연극을 통해서는 사회와 시대를 바라보았다. 연극은 언제나 인간의 삶과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존재해왔던 것처럼 시골에 사는 내게 극 예술은 사회를 바라보는 또다른 배움의 장이었다. 극 예술에 대해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처럼 시각적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읽은 이강백 작가의 『파수꾼』은 내게 희곡이라는 장르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이전까지 내게 희곡은 단순히 배우가 연기하기 위한 대사와 지문으로 구성된 ‘대본’에 불과했다. 하지만 『파수꾼』을 읽으며 처음으로 문장이 그려내는 깊이와 긴장감을 느꼈다. 활자로만 존재하는 텍스트가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고,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하나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희곡은 무대에서 살아 숨 쉬는 극 예술의 시작점이자 어머니였던 것이다. 대사와 지문으로만 이루어진 짧은 글 속에는 인간의 내면과 관계, 시대의 모습이 가장 압축된 형태로 녹아 있었다. 우리가 무대 위에서 보고 듣는 대사들 뿐만 아니라 지문들과 장면의 구성들은 희곡의 메시지를 곱씹는 것 뿐만 아니라, 나만의 공연을 머릿속에서 펼치게 해주었다. 희곡은 문학이 가진 생명의 힘을 상기시켰다. 그것은 시대를 잇는 기록이자 하나의 역사책이며 모든 문학 장르를 포함하는 하나의 거대한 문학예술이었다.
문학은 내게 언제나 입체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압축하여 문자 안에 새겨 넣는 다차원적인 힘이었다. 어떤 문장은 나를 위로했고, 어떤 문장은 내 안의 생각을 깨웠다. 그 모든 경험은 쌓이고 쌓여 지금 나의 꿈을 만든 자양분이 되었다. 소설이 내게 글의 재미를 알려주었고, 시가 나를 내면으로 이끌었다면, 공연예술은 나를 세상과 연결시켰다. 이것이 내가 문학을 사랑하는 이유이자, 『파도가 덮친 20대의 마음』을 지금까지 쓰는 이유이다. 이렇게 삶에 있어서 어떻게든 문학을 곁에 두며 살아온 나는, 시대를 거쳐온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 사회의 구조와 그의 기반이 되는 문화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인간이 문학에 삶을 담게 된 이유에 대한 물음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의 궁금증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문학이라는 예술이 인간의 삶에 처음 등장하게 된 역사, 문학 속에 숨어있는 권력과 불평등, 사회적 고통 등에 대해서 인류학적으로 연구해보고 싶어졌다. 문학, 예술, 그리고 인류학. 이 글을 쓰며 아직 오랜 인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참 여러 분야에 관심을 두고 살아온 내가 새삼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호기심이 내 삶의 큰 원동력인 만큼 앞으로 삶에 있어서 어떤 질문들이 내게 던져지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떤 가르침과 배움을 얻을 지 기대감을 가지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