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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 나온 마리 앙트와네트의 보석들

서양 미술사/ 세계사

by 민윤정

지난 이틀에 걸쳐서 지상에서의 최고의 부귀영화와 최악의 최후를 맞이했던 마리 앙트와네트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다. 처음에는 일 회정도의 포스팅을 하려고 했는데, 하다보니 화제가 넘쳐나서 계속해서 포스팅하게 된다.


내가 전생에 몇 번 태어났다 한들, 프랑스의 왕족으로 태어났었을리는 만무하지만, 자료를 읽다보니 만약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마리 앙트와네트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도 느끼게 되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자기는 그냥 태어나서 주어진대로 살았는데, 한 순간에 역적이 되어 목숨을 잃게 된 셈이지 않은가 말이다.


한편으로는 미술사 수업 때, 매번 '로코코 미술은 사치스러운 귀족들의 생활을 반영한다.'라고 배운대로 이야기 해왔지만, 이번에 그 사치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어나길 왕족으로 태어났다고 그러한 사치를 하고 지내고, 그러한 귀족과 왕족의 생활을 위해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뭐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던 것 분명하다. 그렇게 지배층의 목을 자르는 식의 프랑스 혁명이 과연 해답인가 싶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던 혁명이 일어나는 건 시간 문제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술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오늘날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 결국은 그러한 귀족과 왕족들의 후원에 의해서 제작된 것을 감안하면 복잡미묘한 감정도 든다. 높은 수준의 예술은 자본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한가한 시간이 많아서 교양을 익혀야만 한다. 흠~ 이래서 공산주의에 심취했던 작가들이 '박물관을 폭파시키자.'라고 했던가?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지배층의 생산물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한 예술 작품이 모여있는 박물관 미술관을 폭파시켜야 한다고 극단적 주장을 하던 이들도 예술의 창조 욕구는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시대든 어떤 계급이든 가능하다면 아름다운 작품과 물건을 소유하고자 해왔다. 그리고 각자의 경제적인 수준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가장 수준 높은 미술품과 장식품들을 소유해왔던 것이다. 왕족이나 귀족들이 감내하고자 하는 경제적 수준이 중산층의 경제적 수준보다 높았고, 그래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미술품과 장식품들의 수준 또한 월등이 나았다는 것이 된다.


한편, 보통 사람인 우리는 '소유'가 아닌 '감상'을 할 때에는 한정된 시간 내에 기왕이면 더 높은 수준의 미술품과 장식품들을 접하고 싶어한다. 이것이 '소유'의 문제가 될 때 좀 문제가 복잡해지고, 잘못하면 목이 단두대 사이에 들어가는 건강에 안좋고 위험천만한 사건이 벌어지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른 포스팅에서 한번 살펴보겠지만, 왕족을 다 제거했다고, 그 소유욕을 다 없애버릴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족을 대신하여 지배하는 그 누군가가 그 지배층의 '사치'의 행위를 대신 할 뿐이었다.


며칠간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와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놀랄만한 왕실의 보석들에 대해서 조사를 하다가 접하게 된 경매 소식. 좀 지난 경매이지만, 그 아름다움과 호화스러움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찬스라 좀 옮겨본다. (지난 경매니까, 어차피 구입하실 수는 없어요~ 구입할 수 없는 이유가 경매일자가 지나서만은 아니겠지만. ㅎㅎ)


마리 앙트와네트의 초상화 (1775) 부분과 2016년 11월 12일 경매에 나온 부르봉-파르마 가문의 왕실 보석. Photo Getty and Sotheby's


루이 14세와 루이 15세 때의 사치가 최고를 달했기에 상대적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의 낭비가 두드러지지는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절약하고자 하는 노력은 딱히 하지 않았던 그들이기에 그들의 생활은 무지하게 사치스럽긴 했던 것 같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마리 앙트와네트의 일년간 의상 경비가 오늘날 금액으로 환산하면 36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한화로 대략 41억6천만원을 가볍게 웃도는 금액이다) 일년 평균 주문한 드레스만해도 300여벌이라고. 옷이 그 정도니, 보석과 장신구는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왕관보석들은 프랑스 혁명 때 자취를 감췄다가,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몇차례 소더비의 경매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경매에 모습을 드러낸 마리 앙트와네트의 보석은 실로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혁명을 전후해서 대부분의 보석은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졌던 것이다. 아래의 다이아몬드와 18세기 자연산 진주 펜던트는 무려 3600만 달러 (한화로 대략 416억 가량)에 판매되었다.


요즘이야 양식 진주가 있어서 진주의 가격이 많이 내려갔지만, 이 당시엔 천연 진주 밖에 없어서 크기가 크고 색상이 선명한 고급 진주의 가격은 다이아몬드보다도 비쌌다고 한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진주가 진짜가 아닌 모조 진주라는 설을 뒷받침하는 얘기다. (여기에 대한 글은 다른 포스팅을 참고할 것)


마리 앙트와네트의 천연진주와 다이아몬드 펜던트


마리 앙트와네트의 천연진주와 다이아몬드 펜던트. 경매에서 무려 $3,600-million에 낙찰. Photo Sotheby’s https://theadventurine.com/culture/jewelry-history/at-auction-marie-antoinettes-jewelry/



경매에 나온 또다른 스타 품목은 세 줄로 된 진주 목걸이인데, 무려 119개의 진주가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 나중에 부착한 다이아몬드로 만든 걸쇠로 마무리가 된 것으로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의 후예인 부르봉-파르마 가문의 여인들에게 대물림되어 왔다고 한다.


2018년 11월 14일 경매에 나온 진주 목걸이와 진주/다이아몬드 팬던트가 결합된 모습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46199276
당시 경매에 나온 하이라이트 품목을 한 몸에 치장한 모습.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46199276

전해진 바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서 위기촉발이던 1791년 어느 밤, 베르사이유 궁에서 쫓겨나 튈르리 궁 (Palais des Tuileries)에서 감시를 받던 중에 보석들을 감춰 빼돌렸다고 한다. 이 보석들은 브뤼셀을 거쳐 비엔나로 옮겨져서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의 조카이자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이후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 사이의 자녀들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마리 테레즈 (Marie-Thérèse de France)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그녀는 이후 그녀의 조카 파르마 공작부인에게 물려주었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파르마 공작부인은 혁명의 총아 나폴레옹 1세의 아내가 되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이전의 조세핀 왕후와는 달리 파르마 공작부인은 내성적인 성격에 사치를 즐기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조세핀 왕후의 생존 시에 그녀에게 납품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보석상과 의류 디자이너들이 파르마 공작부인을 극혐했다는 설도 있다. 지배층의 사치를 보다못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건만, 그 뒤를 이은 나폴레옹과 그의 부인의 사치도 남못지 않았단 이야기다.


한때 마리 앙트와네트의 보디스, 꽉 끼게 입는 상의를 장식했다고 알려진 흰색과 황색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브로치. PICTURE ALLIANCE. https://www.veranda.com/luxury-lifestyle/luxury-fashion-jewelry/a32879244/marie-antoinette-jewelry/




마리 앙트와네트가 소유했다고 알려진 21개의 회색 천연 진주로 꾸며진 목걸이. 다이아몬드 리본과 루비 컬러로 구성되어 있다. LEON NEALGETTY IMAGES. https://www.veranda.com/luxury-lifestyle/luxury-fashion-jewelry/a32879244/marie-antoinette-jewelry/



2018년 11월 14일 경매에 등장했던 왕관.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46199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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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트와네트의 이니셜 M과 A의 형태로 다이아몬드를 박아넣어 만든 반지. 이 속에 그녀의 머리카락의 자른 일부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머리카락을 잘라 반지나 펜던트에 보관하는 것은 귀족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관례였다.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46199276 14 Nov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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