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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엄마의 길을 따라

달빛을 잇다

by 소담


밤을 환하게 비춰주는 건 달이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집에 돌아갈 때면 달빛에 의지하곤 했다.

가끔 그믐이나 삭일 때는 어두워서 익숙한 길도 헛디뎌 기우뚱하면, 또다시 친구들과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릴 적 달빛은 그렇게 내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그 시절의 달빛이, 지금은 엄마의 모습으로 내 삶을 비쳐주고 있다.

지금 내 인생에 빛을 내어주는 안내자는 바로 엄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대를 엄마는 지금 지나고 있다.

그동안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에 대해 질문해 보았지만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엄마처럼 살면 되겠구나’ 하는 답을 희미하게나마 찾았다.


팔순이 된 엄마가 아침마다 들려주는 “사랑해”라는 말은 나의 하루를 환하게 밝혀준다.

“꽃보다 네가 더 예쁘지, 그렇고말고.”

그 말 한마디에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요즘은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피곤할 때가 많지만,

엄마가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라고 속삭여주실 때면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가끔은 “하늘만큼 땅만큼”에 “우주만큼”을 더해 말씀하시는데, 이보다 더 큰 사랑 표현이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엄마가 팔십이 되어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일은 나의 노년을 떠올리게 했다.

도시 어르신들은 시골에 비해 문화 활동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적다.

하지만 붓을 들어본 적 없는 시골 할머니가 생애 처음으로, 그것도 오롯이 혼자 그림을 시작한다는 건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엄마는 지금도 그림을 즐기고 계신다.

자신의 그림이 상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셨고,

아직도 친구들과 그림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신다.


엄마가 붓을 든 용기를 보며, 나도 인생의 새로운 장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림을 시작한 엄마의 모습은, 여전히 나에게 길을 비춰주는 또 하나의 달빛이다.


그동안 ‘노년에는 취미부자가 되어 삶을 풍성하게 살아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처럼만 살아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눈에 비친 엄마는 주위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전혀 두려움이 없다. 여전히 인간관계에서 수용적이며 배우려는 자세로 계신다. 무엇보다 자신의 긍정적 감정에 대해 사랑을 담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물론 가끔은 내 말을 못 들은 척할 때도 있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하려고 노력해야 돼. 마트 장보기, 병원 가기, 은행 업무는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직접 해봐야 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적고 자신감도 생겨.”

그랬더니 엄마는 병원에서 오래 기다리는 게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시다가 회사 잘 갔다 오라며 화제를 바꾼다. 아무리 봐도 엄마는 불리하다 싶으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재주가 탁월하시다.


그동안 엄마가 나의 안내자였다면, 이제는 내가 내 아이들의 안내자가 되어야 할 차례다.

엄마의 달빛에서 시작된 그 빛이 또 다른 세대를 비추며 이어질 것이다.


가을밤의 달빛처럼, 환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은은하게, 그러나 분명한 사랑의 빛으로 누군가의 길을 비춰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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