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계절
사계절을 인생에 비유한다면, 봄은 탄생, 그리고 여름은 한창 성장하는 시기다.
우리가 서 있는 지금의 가을은 삶이 서서히 익어가는 시기와 닮아 있다.
그렇다면 삶이 여물어가는 이 계절에 피울 수 있는 꽃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성공을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물질적인 여유를 말하겠지만,
내가 떠올리는 이 시기에 피울 수 있는 꽃은 지혜다.
지혜는 오랜 경험 속에서, 천천히 마음의 결을 만들어가며 은은하게 피어난다.
살아오며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배움은 성취나 숫자로 남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스며드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 질문 앞에서, 어쩌면 삶은 지혜라는 꽃을 피우기 위한 여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의 나무는 여름 내내 무성한 잎을 내어놓다가도 햇살이 낮아지고 하늘이 높아지면 조용히 색을 바꾸고 낙엽을 내려놓는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겨우내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고요한 낙화의 끝에서 나무는 또 한 번 성장한다.
삶 역시 그러하다.
거센 바람을 견디고, 때로는 무너지고 다시 일어섰던 시간들은 마음을 더욱 견고하게 빚어간다.
그 시간을 온전히 살아낸 사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목소리에서, 눈빛에서, 몸짓에서, 조용하지만 선명한 서사가 느껴진다.
그것이 지혜의 온기다.
지혜는 화려하지 않다.
대단한 언변이나 특별한 지식에서 피어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순간에 마주할 수 있다.
상대에게 상처가 될 말을 삼키는 순간,
누군가의 사정을 헤아려 마음을 조금 더 열어주는 순간,
답답함을 참고 상대와 속도를 맞춰보는 순간.
그 모든 작은 선택 속에서 지혜는 조용히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평생 배우고 익히는 이유도 더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다정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그 다정함이야말로, 지혜가 오랜 시간 끝에 맺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열매다.
지혜가 더디게 자란다고 초조해할 필요 없다.
잎이 떨어져야 새 잎이 돋고, 낙화가 있어야 열매가 열린다.
꽃이 피기까지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아직 꽃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가을이 제 속도로 깊어지듯, 우리의 삶도 각자의 속도로 나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