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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 시원한 클래식

여름의 선율

by 소담

나는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겨울’, 그것도 2악장이 더 마음에 든다. 여름과 음악을 주제로 글을 쓰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곡을 굳이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엇박자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여름이라서 즐겨 듣는 음악은 따로 없다. 나에게 음악은 계절의 구분과는 크게 상관없이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어려서부터 가요와는 거리가 멀었다. 노래방을 즐기지도 않았으니, 대중가요의 유행을 따라 부르는 일도 드물었다. 대신 나를 오랫동안 사로잡아온 것은 언제나 클래식이었다. 한때는 플루트의 맑은 소리에 빠져들었고, 또 어떤 시기에는 레오 로자스의 팬플룻 연주에 매혹되어 한동안 그의 음악만을 찾아 듣기도 했다. 재즈의 유연한 리듬과 피아노의 단아한 선율 역시 내 일상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특히 캐논은 언제 들어도 마음을 붙드는 힘이 있었다. 현악기든 피아노든 기타든, 어떤 악기로 연주되든 그 곡은 늘 새로운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이루마의 따뜻한 건반, 조지 윈스턴의 서정적인 곡조 역시 내 마음을 자주 물들이곤 했다. 많은 음악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소리에 몸을 맡겨 잠시나마 편안해지는 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주말 아침, 눈꺼풀이 채 열리지 않은 채 들려오는 클래식은 나를 여전히 몽환의 세계에 머물게 한다. 출근 준비로 분주한 시간, 거실 가득 흐르던 곡조 역시 클래식이었고,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등교 전 매일 아침 들려주던 연주 또한 클래식이었다. 음악은 언제나 일상의 틈새에 스며들어, 소란한 시간을 잠시 잊게 했다.


물론 나의 음악이 언제나 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시절에는 재즈에 흠뻑 빠져 있기도 했다. 뜻밖에도 아들이 같은 시기에 재즈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세대와 취향을 넘어 같은 선율을 공유한다는 사실은 묘한 동질감을 안겨 주었다.


여름은 언제나 뜨겁고 성가시다. 그러나 음악은 그 계절조차 다른 얼굴로 바꾸어 놓는다. 선율 고운 클래식은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식혀 주었고, 재즈의 가벼운 리듬은 무거운 공기를 잠시 잊게 했다. 플루트의 맑은 음색은 후덥지근한 바람을 갈라내듯 시원하게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계절일지라도, 음악은 그 계절을 견딜 수 있는 힘을 건네주었다.


결국 내가 여름과 음악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여름을 상징하는 특정한 곡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내 곁을 지켜주었던 선율들이 여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클래식은 내 마음에 그늘을 드리웠고, 재즈는 지친 여름밤을 가볍게 흔들어 주었다. 그래서 여름을 이야기하다가 겨울을 떠올리더라도, 그 모든 계절의 기억은 결국 한 줄기 음악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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