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뜨겁게 치얼스
9월 26일, 제주 여행의 둘째 날. 바닷바람이 아직 따뜻한 늦여름, 우리는 제1회 가족토론회를 열었다. 바다와 바람을 배경으로 나눈 대화의 시간은 여름날의 건배처럼 시원하고 오래 남았다.
가족토론회의 시작은 지난 6월이었다. 아들의 제안이 계기가 되었고, 모두가 기꺼이 동의했다. 모임의 이름은 ‘북토리’, ‘책을 읽고 토론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담았다. 회칙 내용은 상대방의 발언을 끝까지 경청할 것, 다른 의견을 비난하지 않을 것, 동의를 강요하지 않을 것으로 간단하다. 작은 약속들이 모여 깊이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냈다.
회원의 자격은 ‘가족’에서 출발했지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도록 열어 두었다. 그래서 아들의 여자친구, 딸의 남자친구도 정회원으로 등록됐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가기에 매달 모이기는 어렵지만, 두 달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마주한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첫 도서는 『트렌드코리아 2025』였다. 연말이 가까운 시점이라 늦은 감이 있었지만, 책 속 키워드는 여전히 생생했다. 가볍게 워밍업 하기에도 적절했다. 이어지는 11월 모임에서는 『트렌드코리아 2026』을 읽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각자가 원하는 책을 추천하고 투표로 선정할 예정이다.
토론은 순환 발언으로 진행됐다. 차례가 돌아오면 발언하고, 원치 않으면 ‘패스’를 외칠 수 있었다. 이해가 부족하면 재발언을 요청하기도 했다. 처음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자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토론 이후의 변화였다. 여행길의 대화가 달라졌다. 한라봉 모형의 슬라임을 만지며 “이게 ‘물성 매력’인가?”라며 질문했고, 여유를 즐기다가도 “‘아보하’가 이런 걸 말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웃었다. 작고 귀여운 립스틱 제품이 키링으로 판매되는 것을 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빛을 교환하며 “이건 ‘무해력’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라며 함께 미소를 지었다. 책 속 개념이 일상 속에 스며들자 가족은 한 뼘 더 가까워졌고, 서로를 조금 더 농밀히 이해하게 되었다.
세대를 잇는 다리도 놓였다. 아빠는 아이들의 세계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아이들 역시 아빠 세대를 이해할 기회를 얻었다. 단순한 독서 모임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된 것이다.
여름의 끝자락, 우리는 책으로 “치얼스”를 외쳤다. 술잔이 아니어도 좋았다.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웃음을 나누는 순간, 그 자체가 충분한 건배였다. 제주에서 울린 것은, 바로 우리들만의 치얼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