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책에서 읽었던 파란 하늘을 만들어 주는 태양빛의 파동 원리가 생각이 났다. 새삼 새로울 거 하나 없는 하늘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하고 있었고 오로지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라는 말을 다시 되새겨 보게 되었다. 어쩌면 파란 하늘을 보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파란 하늘이 불러온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잠깐 기다렸을 뿐인데 택시 한 대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마치 예약이라도 한 것처럼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다. 그럴 때가 있다. 큰 행운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이렇게 소소한 작은 행운들은 찰나의 행복을 가져다준다.
가을바람이나 햇살처럼,
택시기사는 목을 정확히 15도 각도로 오른쪽으로 돌리고 인사를 했다. 그러니까 뒤에서 보면 오른쪽 얼굴이 조금 보이는 정도였다. 대부분의 택시기사는 앞을 보거나 백미러를 보면서 인사를 한다. 고개를 조금 돌렸을 뿐인데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검은색 모자 밑으로 하얀 머리카락이 보였다. 전체적인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저 하늘의 별이나 바람처럼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주거나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택시 기사는 다정하게 인사를 했다. 들으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목소리였다. 아무것도 아닌 이런 것들은 묘하게 하루치의 칼로리를 공급해 준다. 시간 속에 놓인 행운을 찾아내듯 기분이 좋아졌다.
"중앙도서관으로 가주세요"
"도서관은 왜 가시나요"
"아 책도 빌리고 읽으로 가요"
"이렇게 좋은 날씨에 도서관에 가시면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
"어디 아파트에 사시나요"
"아 방금 탔던 래미안하이어스에 살아요"
"이웃이었네요"
저는 안양 토박이예요 안양에 있는 **중공업에서 34년 근무하다 정년퇴직 했어요 전기기술로 한평생 먹고살았어요."
"한 직장에서 34년 근무하셨네요."
"네 선후배와 끈끈하게 도와가며 안 잘리고 퇴직했어요 "
"퇴직하고 한 이삼 년 놀다 보니 돈도 까먹고 건강도 안 좋아졌는데 선배가 택시운전 하라고 해서 시작했어요."
"퇴직하신 분들한테 이것보다 좋은 직업이 없어요. 사람들 만나 이야기도 하고 돈도 벌고 술도 안 먹게 되고요. "
나에게 그 34년이라는 시간이 아득함으로 다가왔다. 오랜 세월 묵묵히 자식들을 키우고 가정을 지킨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뒷모습이 그렇게 평안해 보였던 이유가,
짧은 거리였지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택시기사님이 고마웠다. 34년이란 시간은 어린 묘목이 울창한 느티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다.
택시에서 내려 11살인 아들과 도서관으로 걸어갔다. 양쪽 어깨에 두툼한 에코백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마도 내 어깨를 무겁게 했던 건 에코백을 가득 채운 책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