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 때마다 벼이삭은 서로 부딪치며 철썩거렸다. 가까이 가서 들으면 마치 잔잔한 파도소리처럼 들렸다. 가을 햇볕은 벼이삭를 물들이고 곡식을 영글게 해 주었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건 가을이 되면 곡식들이 영글 정도 딱 그만큼의 태양빛이 비쳐주었다.
어떻게 저런 빛깔을 만들어 낼까 !
내내 신비로웠다.
노란색 벼들로 끝없이 펼쳐진 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치 컴컴한 극장 안에서 푸른빛으로 쏟아지는 영화 한 편을 보듯이, 뇌는 어느새 아버지의 논밭을 눈앞에 펼쳐다 놓았다. 아버지는 많은 땅에 농사를 지었다. 지금은 신도시가 되어버린 동탄지역은 대부분 논밭이었다. 아버지는 소작으로 나오는 동네 논밭을 자기 땅처럼 일구고 심었다. 추석 때면 노랗게 물든 논둑 위에서 아버지는 벼이삭을 뜯어 내 손바닥 위에 놓아주었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마치 모래가 빠져나가듯, 하얀색 이삭들이 내 손바닥 위로 하나둘씩 쏟아졌다.
아버지는 까칠한 쌀 껍데기를 솜씨 좋게 벗겨내어 주었다. 이것도 요령이 있어서 무턱대고 손톱으로 벗겨내면 뭉개져서 벗겨지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쌀의 냄새를 맡았다. 벗겨낸 쌀에서 풀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이슬이나 조약돌이나 빗물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했는데 난 지금도 비냄새를 맡으면 그 기억이 떠오른다. 어떤 냄새는 기억 속에 통째로 이식되곤 한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농사는 직접 지어봐야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알 수가 있는데, 난 지금도 일 년에 한두 번 아버지를 도와 드리러 갈 때마다 마음을 굳게 먹고 간다. 분명 곡소리 날 만큼 힘들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짐을 해봤자 별 소용은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가을이 오면 일 년의 노고를 말끔히 씻어 주고도 남을 보상이 들녂에 펼쳐진다. 노란 담요를 덮고 있는 듯한 살찐 벼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는 배가 부르다고 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논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그만큼의 밭농사로 고단함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도 아버지는 농사일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황금들판이다. 그때도 난 고흐의 그림이 생각이 났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난 노란 들녘을 보면 고흐가 생각난다. 고흐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까? 고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냥 자기만의 그림을 그렸을 수도 있고, 수확하는 농부들을 도와주었을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냥 황금들판을 고흐도 보았고 또 나도 보았다는 것이다. 수확하는 농부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 같은 풍경으로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박경리작가의 토지에서 나오는 평사리 들판이 생각났다. 서희가 바라보고 있는 평사리 들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황금들녘에 고객 숙인 벼이삭들을 서희는 어떤 생각을 하며 바라보고 있었을까?
아버지와 고흐와 서희 그리고 나,
모두 황금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다른 시선과 생각으로, 노랗게 익어가는 황금들판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았다.
"이 바람에 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 놓은 새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토지 1 P24
언제나 가을 햇살에 물들어 가는 황금 들판은 묘한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그 편안함은 벼들의 철썩거리는 소리에, 장단 맞춰 울어대는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에, 쏟아지는 따가운 가을햇볕 속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한 줌 속에, 담겨있다.
그러고 보면 태양은 이 시기에 빨간색에서 노란색으로 이어지는 유채색을 세상에 펼쳐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