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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Oct 11. 2024

기댈 수 있는 사람

어느 할머니들의 이야기

기댈 수 있는 사람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이야기인데도,

어떤 이야기들은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는 택시기사가 던지는 인사였을 때도 있었고, 병원 진료를 기다리다 옆 의자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였을 때도 있었고, 너무나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였을 때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우연히 듣는 날엔 마음에 흔적이 남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설레였고, 또 어떤 이야기는  이유 없이 슬퍼었고, 아이들에 이야기에 생각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소설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적어볼까 한다.


두 분의 할머니가 밥을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가 내 귓가에 들려온 건 어제 점심식사 때였다. 머리가 싸한 할머니는 핏기가 없어 보였다.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말투도 어눌해 보였다. 맞은편에 앉으신 할머니는 허리가 굽어 간신히 고개를 들고 있는 듯했다. 상반신이 거의 식탁 앞에 붙어 있었다. 두 분은 청국장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분 다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엔 힘이 없었고 눈가는 슬픔이 가득 고여 있었다.


두 분은 거의 식사를 하지 않은 채 숟가락만 간신히 들고 있었다.


"내 몸에 스텐스가 두 개 들어가 있어"

"지난주에 아들이랑 아주대 병원에 다녀왔는데 혈관이 더 막혀서 하나 더 넣어야 된데. 근데 두 개까지는 건강보험으로 되는데 세 개부터는 돈을 내야 된데. 그게 삼천만 원 이래!"


"집안 말아먹을 것 같아! 미안해서 안 한다 했어 아들한테 미안해서."


"살살 걸어 다니고 운동해."

"청국장이 좀 짜네."


"그래도 든든한 아들이 있어서 좋아!"

"죽을 때까지 기대고 살아야 돼"

"아들 며느리가 수고스럽지"


두 분의 할머니는 서로의 건강을 걱정해 주었다.

할머니의 "기대고 살아야 돼" 두 마디가 내내 기억에 남았다.


한 달에 한번 많게는 두 번 병원 진료를 봐야 하는 부모님이 생각이 났다. 스스로를 완벽하게 케어하다 그렇게 건강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어렸을 때는 늘 어디를 가더라도 엄마만 있으면 든든했던 기억이 있다. 또래 덩치 큰 아이와 놀다가 말싸움이 붙어도 무서울 게 없었다.


요즘은 가끔, 애들을 다 키워낸 동창들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큰애를 군대 보냈다는 동창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이제 애들한테 기대고 의지하고 살게 된다"는  이야기를 곧잘 듣게 된다.


우리는 부모에 넓은 품 안에 기대 살다가, 어느 순간이 지나면 자식들 어깨에 기대어 살아간다. 난 그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그냥 서로에 기댄 모습이 너무나 사람 같아서 보기에 좋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부모님 이어도 좋고, 친한 친구나 선배여도 좋고, 위인전 주인공이나 하느님이어도 좋다. 그건 밑동이 넓은 느티나무여도 좋고, 변치 않는 큰 바위여도 좋고, 햇살과 바람이어도 좋다.


어쩌면 아들에게 할머니가 기댈 수 있는 사람 인지도 모른다. 때론 존재만으로 큰 힘이 되어주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서로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은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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