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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장소가 주는 안도

Ray & Monica's [en route]_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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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The Great Good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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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낯선 모든 것이 즐거운 남자와 그것이 두려운 여자



혼자가 아닌, 아내와 함께하는 유랑의 길에서 몇 가지 감수해야 할 불편이 있다. 좁은 룸 하나를 셰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간에는 각기 다른 활동을 하다가도 해가 지기 전에는 여지없이 같은 방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때부터는 2인용 기숙사 생활이 된다. 서로 극도로 배려하지 않으면 밀접한 관계 속의 피로가 된다.



다른 하나는 적응의 속도이다. 같은 도시를 함께 도달하지만 적응의 속도는 다르다. 나는 새로운 도시의 모든 낯선 것들이 세포들을 깨운다. 그것은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준비된 세트처럼 낯선 친근함이다.



그러나 아내에게 낯선 것은 경계하고 확인해야 할 대상이다. 미지의 영역이 편안한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주 천천히 친해질 시간이 필요한 아내에게 3개월의 정주 시간이 주어졌던 밴쿠버나 3개월 충분히 사랑할 시간을 갖기로 작정한 시애틀은 아내에게도 이 도시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간이다.



#2 집과 직장이 아닌, 제 3의 장소



며칠 전 아내는 한 중고서점으로 간다고 했다. Third Place Books. 갓 발견한, 반나절을 보내기 좋은 곳 같다고 했다. 한나절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걱정이 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방으로 들어섰다.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에 시장을 보고 오느라 더 늦었네."



평소에 내가 듣던 말을 아내에게 했다.



"제발, 어둡기 전에 들어오세요!"



내 감정이 좀 누그러들 때를 기다렸던 아내가 그 서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간 곳은 Third Place Books Ravenna인데 다른 지역에 2곳이 더 있데요. 독립서점인데 새 책과 헌 책이 같은 서가에 함께 섞여 있는데 다만 가격에 차이가 있어요. 로알드 달( Roald Dahl)의 'The wonderful story of Henry Sugar and Six more'를 골랐어요. 청소년들이 주로 읽는 책이어서인지 헌책과 새 책이 함께 있었다. 4달러, 헌책을 골라서 연결된 'Cafe Arta'로 갔어요. 식사도 가능한 곳으로 식사와 함께 이야기를 즐기는 곳과 조용히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이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었어요. 서점과 카페가 연결되어 있지만 경영은 분리된 협업관계라고 해요. 교류가 중요한 독립서점답게 지역 기반의 커뮤니티가 우선인 것에 정이 더 갔어요. 커피 한 잔과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너무 늦어졌네요. 로알드 달의 이야기는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재미가 있잖아요."



이 서점의 이름은 미국의 사회학자, 올든버그(Ray Oldenburg)의 저서 'The Great Good Place'에서 차용했다. 그는 개인의 사적 공간인 집을 제 1의 장소 (First Place)로, 생산성과 성취 중심의 공간인 직장 또는 학교를 제2의 장소 (Second Place)로, 그 외의 자발적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카페, 서점, 바, 공원, 이발소, 도서관 등을 제 3의 장소 (Third Place), The Great Good Place로 정의했다.



#3 천국은 도서관 같은 곳일 것



아내는 또 다른 The Great Good Place를 찾아갔다. Third Place Books보다 더 가깝고 웅장한 곳이며 정원이 80만 평이 넘는 곳. 유덥(UW : University of Washington)의 도서관이다. 시애틀과 타코마(Tacoma), 보셀(Bothell)의 세 개 캠퍼스에 총 16개의 도서관이 있단다.



타테우치 이스트 아시아 도서관(Tateuchi East Asia Library)에 이어 찾아간 유덥의 중앙도서관, Suzzallo and Allen Libraries. Suzzallo와 Allen은 하나의 도서관처럼 연결되어 있다. Suzzallo Library의 Reading Room은 '지성의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일반 건물의 6층 높이(약 19.8m)에 해당하는 고딕 양식의 아치형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창, 고풍스러운 목재 책상과 벽을 따라 늘어선 오크 책장 등이 어울려 중세 유럽의 성당 분위기를 자아내므로 '해리포터 도서관'으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직원에게 방문객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물었다.



"누구나 제한 없이 입장할 수 있고 열람실 이용도 재학생·교직원과 다름없이 활용할 수 있습니다. 200만 권이 넘는 개가식(Open Stack) 장서와 다양한 컬렉션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고 디지털 이미지와 텍스트 자료 등 디지털 컬렉션은 온라인으로 접근 가능합니다. 다만 도서를 외부로 대출하기 위해서는 Friends of the Libraries라는 후원 회원으로 등록해야 해요. 우선 도서관의 와이파이부터 연결해 드릴게요. 이 또한 제한이 없습니다."



누구의 소유라는 이유로 세계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곳, 누구든 자신만의 속도로 머물 수 있는 도서관. 캐나다 코퀴틀람 시티 센터 도서관(Coquitlam Public Library, City Centre Branch)의 로비 벽에 게시되어 있던 “I have always imagined that Paradise will be a kind of library(나는 언제나 천국이 도서관 같은 곳일 거라고 상상해왔다).”라는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표현과 정확히 일치하는 곳이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워싱턴 시민들이 지적 성취를 통해 위대해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이 공간에서 아내도 좀 더 위대해지겠다는 웅장한 욕심을 냈다.



아내는 Third Place Books와 Cafe Arta에서는 라벤나(Ravenna)의 이웃 멤버로 독서하고 먹고 게으름을 즐기고 유덥의 도서관들에서는 '허스키스(Huskies : UW의 상징 동물인 시베리안 허스키에 빗대어 UW학생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가 되어보는 기분을 누려보기로 했다.



이 도시의 서점과 도서관은 경계심 많은 아내에게도 도시가 먼저 마음을 열어주는 '참 좋은 장소(The Great Good Place)'이다.



#시애틀독립서점 #ThirdPlaceBooks #도서관 #SuzzalloAndAllenLibraries #유덥 #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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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 & Monica's [en route]_418 | 시애틀의 'The Great Good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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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낯선 모든 것이 즐거운 남자와 그것이 두려운 여자



혼자가 아닌, 아내와 함께하는 유랑의 길에서 몇 가지 감수해야 할 불편이 있다. 좁은 룸 하나를 셰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간에는 각기 다른 활동을 하다가도 해가 지기 전에는 여지없이 같은 방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때부터는 2인용 기숙사 생활이 된다. 서로 극도로 배려하지 않으면 밀접한 관계 속의 피로가 된다.



다른 하나는 적응의 속도이다. 같은 도시를 함께 도달하지만 적응의 속도는 다르다. 나는 새로운 도시의 모든 낯선 것들이 세포들을 깨운다. 그것은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준비된 세트처럼 낯선 친근함이다.



그러나 아내에게 낯선 것은 경계하고 확인해야 할 대상이다. 미지의 영역이 편안한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주 천천히 친해질 시간이 필요한 아내에게 3개월의 정주 시간이 주어졌던 밴쿠버나 3개월 충분히 사랑할 시간을 갖기로 작정한 시애틀은 아내에게도 이 도시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간이다.



#2 집과 직장이 아닌, 제 3의 장소



며칠 전 아내는 한 중고서점으로 간다고 했다. Third Place Books. 갓 발견한, 반나절을 보내기 좋은 곳 같다고 했다. 한나절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걱정이 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방으로 들어섰다.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에 시장을 보고 오느라 더 늦었네."



평소에 내가 듣던 말을 아내에게 했다.



"제발, 어둡기 전에 들어오세요!"



내 감정이 좀 누그러들 때를 기다렸던 아내가 그 서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간 곳은 Third Place Books Ravenna인데 다른 지역에 2곳이 더 있데요. 독립서점인데 새 책과 헌 책이 같은 서가에 함께 섞여 있는데 다만 가격에 차이가 있어요. 로알드 달( Roald Dahl)의 'The wonderful story of Henry Sugar and Six more'를 골랐어요. 청소년들이 주로 읽는 책이어서인지 헌책과 새 책이 함께 있었다. 4달러, 헌책을 골라서 연결된 'Cafe Arta'로 갔어요. 식사도 가능한 곳으로 식사와 함께 이야기를 즐기는 곳과 조용히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이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었어요. 서점과 카페가 연결되어 있지만 경영은 분리된 협업관계라고 해요. 교류가 중요한 독립서점답게 지역 기반의 커뮤니티가 우선인 것에 정이 더 갔어요. 커피 한 잔과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너무 늦어졌네요. 로알드 달의 이야기는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재미가 있잖아요."



이 서점의 이름은 미국의 사회학자, 올든버그(Ray Oldenburg)의 저서 'The Great Good Place'에서 차용했다. 그는 개인의 사적 공간인 집을 제 1의 장소 (First Place)로, 생산성과 성취 중심의 공간인 직장 또는 학교를 제2의 장소 (Second Place)로, 그 외의 자발적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카페, 서점, 바, 공원, 이발소, 도서관 등을 제 3의 장소 (Third Place), The Great Good Place로 정의했다.



#3 천국은 도서관 같은 곳일 것



아내는 또 다른 The Great Good Place를 찾아갔다. Third Place Books보다 더 가깝고 웅장한 곳이며 정원이 80만 평이 넘는 곳. 유덥(UW : University of Washington)의 도서관이다. 시애틀과 타코마(Tacoma), 보셀(Bothell)의 세 개 캠퍼스에 총 16개의 도서관이 있단다.



타테우치 이스트 아시아 도서관(Tateuchi East Asia Library)에 이어 찾아간 유덥의 중앙도서관, Suzzallo and Allen Libraries. Suzzallo와 Allen은 하나의 도서관처럼 연결되어 있다. Suzzallo Library의 Reading Room은 '지성의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일반 건물의 6층 높이(약 19.8m)에 해당하는 고딕 양식의 아치형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창, 고풍스러운 목재 책상과 벽을 따라 늘어선 오크 책장 등이 어울려 중세 유럽의 성당 분위기를 자아내므로 '해리포터 도서관'으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직원에게 방문객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물었다.



"누구나 제한 없이 입장할 수 있고 열람실 이용도 재학생·교직원과 다름없이 활용할 수 있습니다. 200만 권이 넘는 개가식(Open Stack) 장서와 다양한 컬렉션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고 디지털 이미지와 텍스트 자료 등 디지털 컬렉션은 온라인으로 접근 가능합니다. 다만 도서를 외부로 대출하기 위해서는 Friends of the Libraries라는 후원 회원으로 등록해야 해요. 우선 도서관의 와이파이부터 연결해 드릴게요. 이 또한 제한이 없습니다."



누구의 소유라는 이유로 세계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곳, 누구든 자신만의 속도로 머물 수 있는 도서관. 캐나다 코퀴틀람 시티 센터 도서관(Coquitlam Public Library, City Centre Branch)의 로비 벽에 게시되어 있던 “I have always imagined that Paradise will be a kind of library(나는 언제나 천국이 도서관 같은 곳일 거라고 상상해왔다).”라는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표현과 정확히 일치하는 곳이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워싱턴 시민들이 지적 성취를 통해 위대해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이 공간에서 아내도 좀 더 위대해지겠다는 웅장한 욕심을 냈다.



아내는 Third Place Books와 Cafe Arta에서는 라벤나(Ravenna)의 이웃 멤버로 독서하고 먹고 게으름을 즐기고 유덥의 도서관들에서는 '허스키스(Huskies : UW의 상징 동물인 시베리안 허스키에 빗대어 UW학생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가 되어보는 기분을 누려보기로 했다.



이 도시의 서점과 도서관은 경계심 많은 아내에게도 도시가 먼저 마음을 열어주는 '참 좋은 장소(The Great Good Place)'이다.



#시애틀독립서점 #ThirdPlaceBooks #도서관 #SuzzalloAndAllenLibraries #유덥 #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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