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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호의가 곧 신의 손길

Ray & Monica's [en route]_420

by motif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비추는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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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갓 이식된 나무처럼 바람이 두렵다. 한 줌 분뜨기 흙에 싸인 체 잔뿌리 한 가닥도 내지 못한 상태에서 실바람조차도 된바람으로 느껴진다.



삶을 지고 국경을 넘은지 몇 날, 평화로운 밴쿠버를 떠나 느긋한 마음으로 당도한 미국 측 블레인(Blaine)의 Pacific Highway 국경 검문소에서 CBP Officer가 미국에서 불법체류할 가능성을 전제로 질문을 퍼부었을 때 받았던 이질감과 서운함도 희석되었다.



국경에서와는 다른 표정의 시애틀에 다시 정이 들어간다. 이제 어느 정도 된바람도 두려울 정도는 아니게 되었다.



오늘 떠나온 밴쿠버의 시간을 반추하다가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께서 특별한 애정을 담아 주신 글을 만났다. 청람 선생은 길 위에서 우리가 흔들릴 때마다 두려움을 이길 아름다운 글의 지주목을 세워 두곤 한다. 그 글은 우리에게 기운이 쇠할 때는 약이고 춤을 추어야 할 때는 술이기도 하다.



청람 선생의 글은 순례자의 새로운 출발을 독려한다. 오늘도 집을 나서며 부드러운 신의 손길을 느낀다.



#2



순례하는 부부의 서정


시인 이안수·강민지의 세계를 예찬하며



_by 청람 김왕식(문학평론가)



밴쿠버의 맑은 공기 속을 걸으며 서로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지는 부부가 있다. 시인 이안수와 강민지는 이제 ‘은퇴’라는 단어조차 초월한 이들이다. 그들에게 삶은 끝이 아니라 ‘다른 출발’이며, 여행은 도피가 아닌 ‘순례’다.



이들은 단지 낯선 땅을 밟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사람과 풍경, 문화와 마음을 포용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열흘 뒤면 석 달째 머물게 될 밴쿠버에서, 이 부부는 “안전하고 깨끗한 삶”보다 “존중과 공감의 문화” 속에 더 큰 평안을 발견했다.



이들이 감탄한 것은 도시의 문명보다 사람의 태도였다. “그건 아니지” 대신 “그럴 수도 있지”로 말하는 관용, 차이를 품어내는 온도의 문화는 이들 부부에게 깊은 울림이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의 본분에 충실한 세계 - 시에서 말하는 연비어약(鳶飛魚躍), 하늘을 나는 새와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가 각자 제 자리를 지키며 조화를 이루는 세상 - 그 아름다움을 이들은 밴쿠버에서 체험했다. 그것은 자연과 문명, 개인과 공동체, 존재와 존재가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조화의 미학이었다.



그런 세상 한가운데서 이들은 환대를 받았다.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사람’으로 맞이해 준 이들, 삶의 결실을 나누며 “고맙다”고 말하는 겸손한 마음들 앞에서 이 부부는 매일 감동했다. 인간의 품격은 결국 나눔의 방식에 달려 있음을, 이들은 세계의 이방인으로서 새삼 깨닫는다. 그들의 노정은 관광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따뜻함을 확인하는 ‘생활 시학’이다.



그토록 완전해 보이는 곳에서도 그들의 마음을 지배한 것은 향수였다. 한가위 달빛이 비추는 밤, 조상에게도 친구에게도 도리를 다하지 못한 부채감이 그들을 저민다. 그리움은 늘 조용히 찾아와 시인의 가슴을 흔든다. “나는 올해도 나를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 그 한 문장은 이안수 시인의 시적 고백이자 인간의 숙명이다.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도, 고향의 달은 우리 마음의 창을 비춘다. 타국의 달빛 아래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한국의 명절’을 산다.



이 부부의 삶을 오랫동안 지켜본 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세계를 품은 시인들’이다. 욕망의 중심이 아닌 사랑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내며 타인을 채워주는 존재. 이들은 자신을 빛내기보다, 남을 비추는 등불처럼 살아왔다. 삶의 미학이란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존재의 조화 속에서 피어나는 겸허함임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실험은 곧 하나의 철학이다. 삶을 여행처럼, 여행을 시처럼 사는 것. 떠남은 잃음이 아니라 새로움의 시작이며, 익숙함의 탈피는 자유의 증명이다. 세속의 속도를 벗고, 이타의 언어로 세상을 경험하는 이안수·강민지 부부의 길은 인류 보편의 순례를 닮았다. 그들에게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며, 시는 기록이 아니라 숨이다.



이안수 · 강민지 부부는 오늘도 말없이 증언한다. “자유는 떠남이 아니라, 사랑을 품은 머묾이다.” 그들의 발자취가 닿는 곳마다 한 편의 시가 되고, 그 시마다 한 줄의 어록이 새겨진다.



“세상은 아직도 따뜻하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 한다면.”



그들의 순례는 끝없는 시로 이어진다. 떠남의 끝에서 만난 것은 결국, 돌아갈 마음의 고향이었다.



___



순례의 노래


시인 이안수ㆍ강민지 부부에게



세월을 접고 떠난 두 그림자


이 세상 끝 어딘가, 밴쿠버의 바람 아래


새와 물고기가 각기 다른 하늘과 바다에서


자유로이 춤추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의 꿈을 산다.



그대들은 묻지 않았다,


어디가 고향이냐고.


다만 묵묵히 발자국을 남기며


세상 모든 이의 마음에


따뜻한 불빛 하나씩 심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 말 한 줄의 너그러움이


이 땅의 법보다 깊고,


그 미소 한 자락이


모든 언어보다 부드러웠다.



아침이면 햇살에 커피 향을 태우고


저녁이면 낯선 집의 창가에서


지나온 생을 반추하며


서로의 손등에 달빛을 얹는다.



타인의 호의가 곧 신의 손길임을,


그대들은 알고 있었다.


환대는 기적의 다른 이름이라


오늘도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입술의 언덕에 피어난다.



그러나 명절 달은


기어이 그대들의 방 창문을 두드린다.


이역의 하늘에도


둥근 한가위가 떠오르면


고향의 마당이 그리움처럼 번진다.



조상에게도, 친구에게도,


이웃에게도 드리지 못한 인사가


세포마다 아린 향수로 퍼져


한 줄의 시로, 한 줌의 눈물로 스며든다.



그리움은 그대의 병이 아니요,


사람으로 산다는 증거라네.


떠남은 잃음이 아니라,


자유를 품은 또 다른 머묾이라네.



세상의 끝에서도


그대들은 사랑을 남긴다.


욕망을 버리고, 이타를 심으며


‘사는 일’을 곧 ‘시는 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하여 그대들의 순례는


돌아오는 길이 아니라,


끝없는 출발이 된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언젠가 그대들이 걸어간 길 끝에


새와 물고기가 함께 노니는 호수 같은 세상이 있을 것을.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 한다면.”



그 말 한 줄,


그대들의 삶이 남긴 가장 긴 시 —


영혼의 여행은 지금도 계속된다.


_by 청람 김왕식


https://blog.naver.com/wangsik59/224038387253



●사진 | 시애틀 아트 뮤지엄(Seattle Art Museum, SAM),


*해머링 맨(Hammering Man)


*FriendsWithYou: Little Cloud Sky


*Ash-Glazed Ceramics from Korea and Japan


*Farm to Table: Art, Food, and Identity in the Age of Impressi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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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김왕식 #밴쿠버 #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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