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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것이 나라면 이날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하리

Ray & Monica's [en route]_423

by motif


고향과 가정을 선물해 주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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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Sunny Hwang 선생님께서 챙겨주신 은대구 오븐구이의 부드러운 흰 살을 브런치로 음미하다 보니 이사콰 알프스(Issaquah Alps)의 서쪽 쿠거 산(Cougar Mountain) 언덕, 아름다운 써니 선생님 자택에서 누린 만찬이 '지금' 그리고 '여기'인 양 생생하다.


저희 부부가 시애틀에 도착한 뒤 유혜자 어르신께서 주최해 주신 레스토랑 미팅에서 저희 부부가 거쳐온 거친 여정을 들으시고 한 분이 안타까움과 대견함이 섞인 마음의 일성을 하셨다.


"벨뷰와 레드먼드의 마이크로소프트 캠퍼스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저희 집이 인근이니 어렵지 않은 일이에요."


써니 선생님의 그 말씀이 실현되어 다시 도서관 친구들이 함께 모이는 만찬 자리가 되었다.


벨뷰에서 저희를 픽업해 주신 유어르신과 함께 써니 선생님댁에 들어섰을 때 가장 큰 안심은 현관에서 반겨주신 환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놀라움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정갈하지만 하나하나가 긴 시간이 소요되었을 다양한 메뉴였다. 함께 오신 분들께서 단품 메뉴를 더하셨다지만 써니 선생님께서 감당하고 드렸을 시간을 헤아리면 며칠간의 노고가 녹아든 차림임이 분명했다.


덜컥 겁이 난 것은 이런 음식을 먹고 나는 도대체 어떤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지, 하는 두려움이었다.

식탁 위에서 나눈 대화 속에서 밝혀진 내용들은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했다.


"모두의 고모님으로 불리시는 이정원 선생님은 아흔이 넘으셨습니다. 변함없는 저희 모두의 멘토이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당을 가시면서 우리를 픽업해 가시기도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모두의 고모님'일 수 있으며 각기 다른 인생 의문에 처방을 내시는 지혜도, 건강도 함께 갖추실 수 있을까.


이날 여든셋의 생일 축하를 받으신 유어르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라인댄스 강습을 마치고 홀로 고속도로를 운전해 오셨습니다. 고모님에게 단단히 말씀드렸습니다. 고모님이 100세가 되실 때까지 절대 제가 우리 커뮤니티의 고모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라구요."


우리 부부는 황 선생님 부부 댁에서의 시간을 통해 대모가 되고 대녀가 되어 함께 충만할 수 있도록 서로를 채워주는 행복이 일상으로 구현되는 모습을 목도했다.


일상이 치열한 목표로 이루어진 투쟁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나누는 격조의 시간으로 승화된 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누군가가 목표를 묻는다면 이제부터 '아름다움'이라고 답하겠다.


#2


만찬이 끝이 아니었다. 지난번 뵈었던 분들께서 시애틀의 겨울철 임시 거주자를 위한 선물들을 우리 가슴에 한가득 안겨주셨다. 직접 우리 부부를 위해 만드신 코바늘 손뜨개 목도리, 캠퍼스의 도서관을 오가며 학생이 되어보는 기분을 맛 보라는 유덥(University of Washington)의 허스키스 니트 퍼 비니(beanie)와 머플러, 시애틀의 미술관과 박물관 입장권까지.


써니 선생님께서는 최고의 어휘로 우리의 에너지를 북돋아주셨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나라면 이날만을 기억으로 남겨도 한 점 부족함이 없겠다.


"우리 집에 오신 특별한 손님.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친구의 친구이면서, 페이스북에서도 연결된 부부가 있다. 남편분은 파주 헤이리의 ‘산파’ 역할을 하신 분으로, 그곳에서 북스테이를 운영하다가 지금은 따님께 맡기고 부부가 함께 은퇴 생활을 즐기고 계신다.

은퇴 후에는 10년 정도를 계획해 세상을 주유하고 있는데, 요즘 유행처럼 번진 ‘한 달 살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분들은 한 도시에 서너 달씩 머물며 3년 가까이 유랑하듯 살아오고 있다.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데다, 타고난 친화력, 끝없는 호기심,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 듯한 인문학적 소양, 어떤 주제든 깊은 대화로 이끄는 식견까지,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는 특별한 분들이다.

안락한 일상과 익숙한 예측 가능함을 떠나 10년의 모험을 이어간다는 그들의 의지와 탐구심은, 나 같은 평범한 이로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스쳐 지나가는 풍경 너머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해지는 법. 그래서 집으로 부부를 초대했다. 마침 11월은 혜자 언니의 생신 달이기도 하여 오랜만에 도서관 친구님들도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밖은 비가 추적거리는 11월의 쓸쓸한 날이었지만, 정성 들여 차린 식탁은 우리 몸의 기운을 든든히 북돋웠고, 우리의 대화는 깊고 향기로웠으며, 무심히 흐르는 시간이 아쉬울 만큼 풍요롭고 따뜻한 하루였다.

_by Sunny Hwang"

https://www.facebook.com/sunny.hwang.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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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Sunny Hwang 선생님 부부께,


저희 부부, 세상을 공부할 마음으로 집을 떠나온 지 세 해.


떠나온 집으로부터 아무리 멀어져도,

집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습니다.


길 위의 시간들이 아무리 쌓여도,

고향의 그리움은 옅어지지 않습니다.


어스름 저녁, 불 켜진 어느 댁 앞을 걷다가도

창 너머 따스한 불빛 속으로 이끌리곤 합니다.


오늘, 비로소 그 창의 행복한 가정 안에서

치유할 길 없던 향수를 치유받습니다.


남루한 나그네에 대한 온유한 환대로

고향과 가정을 선물해 주신 황 선생님 부부께,

우정 어린 마음 가득하신 선생님 친구분들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의 감사와 감동을 고백합니다.


오늘의 환대를 저희 삶이 지향해야 할 지극한 목표로 삼습니다.

존경과 감사를 담아

이안수·강민지 올림"


●UW 한국학 도서관 친구들

https://blog.naver.com/motif_1/22407607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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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 #학국학도서관친구들 #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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