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합니다, 고객님.
나를 견고하게 해주는 진상고객님
미용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때론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도 한다. 손님의 한마디에 상처받고 퇴근길에 눈물을 뚝뚝 흘린 적도 많았다. 손님의 칭찬에 입꼬리가 하늘로 승천할 듯 내려오지 않은 날들도 많았다. 여러 일들 중 오늘은 역대 빌런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분으로 인해 내가 더 견고해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여름, 장마철이 한참이라 뉴스에선 불쾌지수가 높다는 말을 계속 해댔다. 불쾌지수가 어떻든 난 상관이 없었다. 가게를 열어야 했고 예약된 손님을 받아야 했고, 그 당시 100% 예약제가 아니었기에 지나가다 들어오시는 로드손님들도 시간이 맞으면 받는 통에 조금 더 정신없고 소란스러운 날들의 연속을 보내고 있었다.
그분은 마침 네일손님이 노쇼를 내셔서 3시간이나 시간이 비었을 때 지나가다 봤다 하시며 가게로 들어오셨다. 네일을 하시고 싶다고 하셨고 기분 좋게 네일을 고르고 받으셨다. 네일 받으시는 동안 우리 샵에서 얼굴관리도 가능하단걸 아시곤 문의를 주셨고, 마침 또 얼굴관리 시간이 뒷타임에 비어있어서 손님을 연결해 드렸다. 얼굴관리까지 다 받으시고 기분 좋게 가게를 나가셨고 다음에 또 오시겠다며 고객등록을 하시고 하하 호호 웃으며 호기롭게 인사하시며 나가셨다. 그렇게 신규 손님을 또 받았다며 신나 했다. 그 당시 오픈 2년 차인 나로서는 신규 손님이란 아주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였다.
몇 시간 뒤 그분의 격양된 목소리가 수화기를 뚫을듯한 기세로 가게에 전화를 주셨다. 전화를 받자마자 화를 내셨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계속 실소를 터트리시며 흥분을 감추지 않으시고 비아냥 거리듯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아드님께 받은 소중한 우산을 분명 가게에 들고 오셨는데 나올 때 안 들고 온 거 같다. 그거 아들이 사준 거고 비싼 거니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가게 우산통을 확인한 결과 꽂혀 있는 우산은 없어서 죄송하지만 현재 가게에 그런 우산은 없다고 안내해 드렸다. 그분은 조금 더 흥분된 듯한 목소리로 "그럼 너희가 숨겨둔 것이다. 아님 다른 손님이 가져갔겠지. 그러니 물어내라. 그 우산은 비싼 것이고 아들이 선물한 거라 아주 소중한 것이니 당장 찾아내라."라고 말하며 소리를 지르셨다.
당시 시술 중이던 손님이 계셔서 "일단 고객님, 저희가 조금 더 찾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현재 저희도 시술 중이라서 다른 고객님들이 가게에 계셔서요. 찾아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안내한 뒤 일단 전화를 끊었다.
전화통화를 엿들은 고객님들은 내 상황을 대변이라도 해주시려는 듯 이상한 사람 다 있다며 화를 내주셨다. 시술 중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진 나는 일단 피부관리를 담당하시고 계신 엄마께 상황을 알리고 혹시 그 고객님 이전에 얼굴관리를 받으신 고객님께 우산이 바뀌거나 착각을 하셨을 수도 있으니 여쭤봐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전에 관리를 받으신 분은 우리 가게 근처에서 음식점을 하시던 분이셨는데 엄마는 실례를 무릅쓰고 가게까지 찾아가 양해드리고 여쭤보기까지 했다.
우리가 우산을 찾는 한 시간 동안 그분의 전화는 10분마다 한 번씩 계속되었고 어찌어찌 예약을 마무리한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과 빨개지는 얼굴이 당황스러움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마치 내가 우산을 훔치기라도 한 듯 심장이 떨렸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말씀드리며 이제 고객관리가 모두 끝났으니 cctv를 돌려봐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도둑년들이라며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시기 시작했다.
화를 참다못해 나도 언성이 높아졌고 이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닐 거 같아서 cctv를 돌려봤다. 그분이 가게로 들어오시는 장면 나가시는 장면을 모두 캡처해 저장을 했고 그분이 들어오실 때는 물론 나가실 때도 우산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캡처 장면을 보내드리며 고객님, 저희 가게에 오실 때 애초에 우산을 가져오시지 않으셨어요.라고 말씀드리니 아무 말 없이 전화를 툭 끊으셨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억울한 마음이 가장 컸고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이렇게 욕먹을 일인가 싶었다. 미용을 하는 게 겁이 났다. 하기 싫었다. 사람을 그토록 좋아하던 나인데 일을 할수록 가게를 꾸려 갈수록 사람이 싫어졌다.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때의 난 너무 어렸다.
몇 시간 뒤 그분은 다시 전화를 하셔서 "아 찾아보니 집에 있네요. 아깐 전화기 배터리가 없어서 끊어졌습니다. 수고하세요."라고 본인 말만 하시곤 전화를 끊으셨다. 나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분의 전화 통화 내용엔 그 어디에도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20대 중반의 나는 성숙하지 못했고 쉽게 상처받았고 이런 일에 대응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저 그 고객님이 미웠고 아무것도 안 한 나에게 왜 욕을 하는지 억울했고 원망스러웠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첫 전화가 왔을 때 cctv를 확인하면 됐고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더라도 여러 차례 오는 전화를 굳이 다 받으며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어도 되었다. 굳이 누구의 탓인가 물으면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데 대처방법을 몰랐던 지난날의 내 탓이 아닐까. 그때의 난 어렸고 여렸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현재의 나는 웬만한 컴플레인은 그냥 웃으며 대처할 수 있는 단단한 경력자가 되었다. 물론 우산사건뿐 아니라 여러 사건을 경험하며 생긴 굳은살 같은 것이지만. 역시 경험은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고객님들은 사실 지불한 비용이상의 서비스와 친절을 바라고 예상한 것 이상의 서비스와 친절을 경험했을 때 해당 가게의 평점을 높게 평가한다. 같은 퀄리티의 시술을 진행했을 때 흔히 말하는 립서비스 한마디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고객의 리즈를 충족시키냐 아니냐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말 피땀 흘려 얻어낸 경험의 결과이다. 20대 중반, 숫기 없이 무뚝뚝했던 나는 처음 뵌 어머님께 "오늘 옷이 너무 멋쟁이시네요. 어디 놀러 가시나 봐요?"라고 먼저 말을 건넬 줄 알게 되었고, 엄마를 따라온 꼬마 손님께 "공주님, 이모가 간식을 줄게요. 다음에 또 놀러 와요."라고 웃으며 인사할 줄 알게 되었다. 경험의 대가였다.
지난날 흘린 눈물들이 나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주고 지난날의 웃음들이 앞으로 일을 계속할 이유를 만들어 준다. 내게 부정적인 경험도 긍정적인 경험도 나를 한층 더 성장시켜 준다는 걸 이제는 안다.
환영합니다, 진상 고객님들. 환영합니다, 고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