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내준 달래장
요즘 100일도 안된 아기를 육아하는 중이라 남편이 없는 평일 점심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한다. 라면을 끓여도 불어 터져 버리기 일쑤 밥을 차려놓고 한술 뜨려고 하면 꼭 아기가 깨어나 "응애"하고 울어댄다. 남편이 퇴근하고 난 저녁에서야 밥다운 밥을 먹는데 요즘 봄이 와서 우리 집 밥상에도 봄내음이 물씬 풍긴다. 물론 시간이 없어 요리다운 요리를 하지는 못하지만 제철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는 요즘 봄 음식을 먹으며 육아의 힘듦을 다독이곤 한다.
어릴 때부터 봄답게, 봄에 꼭 먹는 음식이 있다. 바로 달래장이 그것인데 나에게 달래장은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작년까진 손수 달래를 사서 장을 만들어 밥과 비벼먹곤 했는데 아기를 보는 요즘은 도저히 달래를 사러 나갈 시간도 힘도 내겐 없었다. 그래서 외친 게 바로 "엄마!"였다.
출산 후 한 번도 뭐가 먹고 싶다고 엄마에게 헬프콜을 한 적이 없었는데 매년 먹던 달래장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달래장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도저히 만들 수가 없다며 어리광을 부렸다.
동네에서 손이 크다고 소문난 우리 엄마는 산 하나에 난 모든 달래를 죄다 끌어모았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달래장을 보내 주셨다. 달래장을 받은 나는 이걸 어떻게 다 먹나 절망에 가까운 신음을 읊조렸다. 무려 엄마가 나를 위해 해주신 건데 남겨 버리면 너무 아까울 거 같은 안타까운 마음에서였다.
'안 되겠다. 오늘부터 매일 달래장을 먹어야지.'
달래장과 잘 어울릴 거 같은 무나물을 만들기로 했다. 마침 집에 겨울무가 남아있었고 겨울무의 달큼한 맛을 살리기 위해 투박하게 채를 썰었다. 보통의 무나물과 다르게 식감을 느끼고 싶었기에 오래 볶지 않기로 했다. 무나물을 즐기지 않는 우리 남편도 달큼한 겨울무로 들기름에 볶은 무나물은 곧 잘 먹기에 무 반 개를 썰었다. 내가 손이 큰 건 엄마를 닮은 게 분명해 보였다.
들기름을 두른 궁중 프라이팬에 투박한 모양의 굵직굵직한 채 썬 무를 담고 약불에 서서히 볶았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다른 것은 넣지 않았다. 평소엔 다진 마늘을 넣기도 하고 대파를 다져 넣기도 하는데 오늘은 왠지 깔끔한 무나물이 먹고 싶었다.
무가 들기름의 노란색으로 치장을 하고 고소한 내를 풍겼다. 힘이 빠져 흐물거리기 전에 가스불을 껐다. 약간의 아삭 거림을 위한 절호의 타이밍을 놓칠 수 없었다. 온 집안이 고소하고 달큼한 냄새로 포근하게 덮였다. 기분 좋은 냄새였다. 도시에서 태어나 존재하지도 않는 시골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얗고 넓은 대접에 밥을 퍼 담았다. 마치 칼질 못하는 어린이가 썰은듯한 투박한 무나물을 밥 위로 둥글게 담았다. 계란프라이 2개로 작은 사치를 부려 무나물 위에 얹는다. 화룡점정으로 엄마가 보내 주신 달래장을 크게 한 스푼 퍼서 중간에 올렸다. 이대론 아쉬우니 참기름을 한 바퀴 둘렀다. 반찬도 필요 없는 무나물 달래장 비빔밥.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얼른 한 숟가락 퍼먹고 싶지만 오늘의 글을 위해 사진을 찍어댔다.
마침 착하게도 100일도 안된 아기는 엄마의 요란한 봄내음 찾기를 기다려 주는 듯 사진을 찍을 때 까지도 "엥"소리 한번 내지 않고 4시간을 쭉 자주었다. 이럴 때 보면 눈치 빠른 효녀 같다. 식탁에 놓고 앉아 밥을 비볐다. 미소가 지어지는 설레는 숟가락질이었다. 한 숟가락 입에 넣으려 하는데 "으앵!" 타이밍에 잘 맞춰 아기가 깨어났다. 꼭 한 숟가락 뜨려 하면 깨는 아기들의 타이밍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눈치 빠른 효녀란 소리는 다시 집어넣어야겠다.
30분을 어르고 달랜 뒤 간신히 아기침대에 아기를 눕히고 다시 식탁에 앉았다. 드디어 비벼둔 무나물 달래장 비빔밥을 입에 넣었다.
'맙소사!"
진작 해 먹을 것을! 이맛을 왜 이제야 맛본 것이지. 지난 세월 동안 무나물과 달래장을 함께 먹을 생각을 왜 못했나 자책했다. 입에 한가득 달래의 봄향과 들기름의 꼬순내, 무의 달달하고 아삭한 식감, 계란의 포근함.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입안으로 들어와 봄을 가져다주었다. 아, 진정한 봄이 내게 왔구나.
올해 따라 더 달래향이 좋은 듯했다. 엄마가 싹쓰리해서 넣은 달래의 양 때문일까? 무나물과 어우러져 더 빛을 본 것일까? 아니. 육아의 시큼함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딸을 위해 달래를 손수 다듬어 장을 해 보내주신 엄마의 노고 때문이지 싶다.
오늘도 달래장 한 스푼으로 점심을 후딱 해치웠다. 여전히 계란 두 알의 사치를 부리며 무나물을 가득 올린다. 한술 채 뜨기 전에 깨어난 아기를 달래고 늦은 점심을 먹었지만 일주일째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올해의 달래장은 더욱 특별하고 맛있다. 그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재료 "우리 엄마의 사랑"이 첨가 됐기 때문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