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모엣샹동
남편의 동생 그러니까 나의 도련님은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졌다. 게다가 명절에 차례를 지내고 나면 그 많은 설거지를 혼자 도맡아 하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시댁이라는 세계에서 가히 유니콘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에게도 딱 하나의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술을 못한다는 것!
처음엔 내가 권하는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형수가 주는 것이니 차마 거절을 못했을 것이다. 몇 번을 연거푸 들이키더니 이내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했다. 더는 안 마시겠다는 말을 차마 못 하고 자기는 차라리 독주가 낫다고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그리곤 다음 모임에는 자기가 좋은 술을 준비하겠다며 결의에 찬 눈빛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나는 술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40도가 넘어가는 끈적이는 액체는 즐기지 않았다. 결국 도련님이 가져온 고급 중국술을 반 잔도 마시질 못 했다. 향만 맡아도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그냥 포기해 버렸다.
도련님과 친해지고 싶어도 술 취향이 맞지 않으니 왠지 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졌다. 누군가와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잔을 부딪치는 것밖에 모르는 나에게 도련님은 피할 수 없는 높은 산처럼 보였다. 만나면 커피잔을 마주하며 신나게 수다를 떨긴 했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도련님이 여자친구를 데려왔다. 10년 이상 알고 지냈지만 짝꿍을 소개해주는 건 처음이라 마음이 떨렸다. 신경 써서 화장을 하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밝은 표정의 둘이 나를 맞이했다. 그녀의 손에는 기다란 쇼핑백이 들어있었다.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분명 나를 위해 술을 사 온 것이리라.
수줍은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아 요리조리 눈치만 살폈다. 도련님은 옆에 앉은 여자친구의 이름을 말하자마자 한 문장을 덧붙였다. "이 친구는 술을 잘 마셔요." 나도 모르게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는 다소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준비한 쇼핑백을 건넸다.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며 조심스레 리본을 풀어봤다. 안에는 그 유명한 모엣샹동이 들어있었다.
명품은 루이비똥, 와인은 모엣샹똥!!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던 문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내 표정을 보며 둘은 웃음을 지었다. 여러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샴페인을 드디어 맛보다니 설렘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 한 병을 전달해 준 그녀를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
즐겁게 첫 만남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샴페인을 열었다. 이미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왔지만 예비동서가 선물해 준 특별한 와인이니 당장 마시고 싶었다. 향도 제대로 맡지도 않고 코르크를 따서 곧바로 잔에 따라 마셨다. 뽀글한 탄산감과 함께 풍부한 과일향이 입 안으로 퍼졌다. 자본주의의 맛이란 이런 걸까.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한 모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나의 실제 동서가 되었고 시아버님과 함께 술을 마시는 며느리가 둘로 늘어났다. 쉴 새 없이 차오르는 사랑을 견디시려면 오래 건강하셔야 할 텐데 조금은 걱정이 된다. 도련님도 물이나 얼음을 넣어 마시며 나름대로 술자리를 오래 버티려 노력하고 있다. 참으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장면이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시댁모임을 즐기는 MZ세대 끝자락 며느리들. 역시나 마무리 설거지는 도련님이, 가끔은 남편이.
이번 연휴에는 기쁜 소식으로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녀와 함께 모엣 샹동을 기울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양손에 한 병씩 들고 갈 차례이다. 그때는 뿌엥거리는 아기가 한 명 더 늘어나겠지만 전쟁 같은 틈에서도 그녀와의 건배는 잊지 말아야지. 머릿속에서 그려 둔 모습이 빨리 현실이 되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