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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게 묘사하기

#정윤작가님 소설반 글쓰기 숙제 - 2

by 빛나는

<<1시간 글쓰기>>


-해야할 것

손을 절대 멈추기 않기

이상한 문장도 일단 쓰고 넘어가기

막히면 막힌다고 적기


-하지 말아야 것

지우개 사용 금지

처음으로 돌아가서 고치기 금지

중간에 읽기 금지




(시작 10:25)


머릿속에서 커다란 스케치북을 하나 꺼낸다. 앞 페이지를 넘겨 하얀 도화지를 펼치고 작은 먼지 한 톨도 남지 않도록 따뜻한 입김을 불어 바람을 만들어 낸다. 마음을 정리하는 의식이랄까. 내뱉은 숨을 다시 삼켜 몸을 정돈하고 눈을 감아 천천히 그림을 그려 나간다.


두 사람이 숲 길을 걷고 있다. 사실은 여러 명이 있지만 내 눈에는 두 명만 보인다. 그들은 손을 맞잡고 있다. 젊은 연인이었더라면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뜨겁게 손가락을 겹쳐 깍지를 꼈겠지만 이 둘은 그러지 못하다. 서로에 대한 존중의 표시일까, 젊은날 사랑에 집착했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의 결과로 인한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 악력이 쇠한 탓도 있으리라. 약지와 새끼를 내어준 남자의 손을 얼기설기 붙잡고 있는 여자의 손에서 그를 의지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맞닿은 면은 적지만 그들의 희미한 온기가 전해지기엔 충분한 느낌이다. 옛시절엔 타오를듯 꽉 붙잡았겠지. 그 당시엔 자신들의 노년을 상상하며 약한 기운으로 두 손을 겹칠 것이라 생각을 했을까. 살아온 세월이 어떠했던지 그 둘이 여전히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남자의 손목에는 시계가 있다. 연한 갈색 시계로 보여지는데 건강팔찌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주름진 팔꿈치가 그의 나이를 말해준다. 그가 건강을 챙겨야 하는 이유는 자신에게도 있겠지만 자신의 두 손가락을 붙들고 있는 한 여인 때문일 것이라 감히 상상을 해본다. 구부정한 등에는 짙은 갈색의 반팔 카라티가 덧대져 있다. 아직은 건장해 보이는 뒷모습이 그의 든든한 성품을 말해준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허리는 욱신거릴 나이지만 꼿꼿하게 발 걸음을 옮기는 모습에 당당함이 느껴진다.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있다. 어떤 연락이 오든 바로 확인 할 수 있도록 꽉 쥐고 걸음을 걷는 모습에 철저함이 두드러진다. 아마 곁에 있는 여인이 혹여라도 다칠 경우에 대비한 것일까, 그냥 걱정이 많은 탓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나이 든 내 모습보다 더 걱정이 되는 자식이 있는지도. 하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반바지를 입고 있다. 더운 날씨가 계속되어 허벅지가 드러나는 짧은 옷을 입고 싶었을 텐데 예의와 격식을 중시하는 곧은 사람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발에 신은 슬리퍼는 검정색으로 깔끔한 실루엣의 완성을 보여준다. 하얀 머리칼만 아니라면 노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뒤태이다. 살짝 숙인 고개가 근심이 많아 보이기 보다는 넘어지지 않기 위한 조심스러움으로 보여진다. 이 또한 옆에 있는 여인을 위한 일이라. 가부장적인 시대를 살았을 텐데 다정한 남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옆에 있는 여인은 남편에 비해 다소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연보라색 바탕에 분홍 나팔꽃이 활짝 핀 티셔츠를 입고 있다. 팔꿈치 위쪽까지 올라오는 소매의 길이감이 단정하다. 바지는 짙은 파란 계열로 윗 옷과 색감이 잘 어울린다. 할머니가 입는 옷이라고 촌스럽게 생각 될 수도 있으나 모호한 경계를 잘 피해간 듯 곱다는 감탄의 말이 나온다. 이 여인의 패션에 정점은 모자라고 할 수 있다. 바다에서 쓸 법한 챙이 큰 모자를 썼는데 남색과 흰색이 뒤섞인 스카프가 둘러져 있다. 원래 살때부터 붙어 있는 것인지, 그녀가 직접 둘러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소품을 고르는 안목 느껴지는 아이템이다. 신발은 운동화를 꺾어 신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 발이 부은 탓이 었을까. 아니면 아이처럼 오늘은 신발을 제대로 신기 싫다고 남편에게 투정을 부렸을까. 손을 한 번이라도 더 잡기 위해, 그에게 기대어 걸어볼 핑계를 만들기 위해 귀여운 애교를 부린 건지도.


늘 걷는 길이라는 게 그 둘의 발걸음에서도 느껴진다. 편한 신발을 신고 목적지 없이 옮기는 발걸음이 가볍게 보인다. 붉은 벽돌길이었을 이 길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많은 이가 밟고 지나갔을 이 거리는 회색빛 벽돌에 검게 낀 흙과 전날 내렸을 빗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혹여 산책하는 사람들이 심심해 할까봐, 땅만 보고 걷는 이가 갈 길을 잃어 버릴까 중간 중간 회색빛 대리석으로 구간 표시를 해놓았다. 사진의 아래쪽 구석에 그 배려가 엿보인다.


이 길의 장점은 울창한 나무에 있다.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반팔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계절감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나뭇잎이 무성해서 하늘을 다 가리고 있다. 아, 나무의 색을 통해 사계절은 예측할 수 있겠다. 초록이 묻어나오는 걸로 보아 여름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더운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나무가 햇볕을 막아주고 있어 사람들은 눈을 찌푸리지 않고 길을 걸을 수 있다. 나무의 종류는 다 열거하기도 힘들 뿐더러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명명한 이가 있을텐데 그 단어를 몰라 불러주지 못함이 미안하지만 네 역할은 늘 고마워하고 있단다. 짙은 초록빛을 앞세워 물을 한 방울씩 탄 느낌으로 연두빛에서 흐린 노란빛까지 각양 각색의 빛깔을 뿜어내고 있다. 가지에 매달린 모습을 보아하니 거친 비바람도 거뜬히 견딜 수 있어 보인다.


햇살은 왼쪽에서 잎 사이 틈으로 들어오고 있다. 길바닥에 조금씩 기다랗고 투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늘 진 자리지만 자신이 하늘에 떠 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잎파리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있다. 나뭇잎은 이에 질새라 평소보다는 조금 더 넓게 잎을 벌리고 있는 것 같다. 행여 따가운 햇볕에 상할까 걱정되는 두 노인의 앞 길을 지켜주듯이.


길의 오른쪽에는 빨간 하트로 꾸며진 그네가 있다. 그 위에는 앙증맞게 화살이 꽂혀 있다. 화살촉이 하트를 통과한 모양으로 뒷부분에 있는 깃털만 하트 엉덩이의 왼편 위에 보인다. 아마도 그리스로마신화의 에로스 천사를 상상해서 만들어둔 구조물인 듯 하다. 뻥 뚫린 하트는 흰색으로 칠해져 있고 테두리만 빨간색이다. 중간 중간에 그네를 타는 사람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누군가 앉아서 기다리는 이가 있다면 오가는 길을 엿보기에 좋을 듯 하다. 혹시라도 자식의 늦은 귀가를 걱정하는 엄마가 그네를 타면서 마음을 달랜다면 그 뚫린 구멍으로 더 넓게 볼 수 있으니 더 빨리 자녀를 발견 할 수 있겠지. 반대로 아이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면 반가움이 더 빨리 찾아갈 것이다. 그네는 튼튼한 철제 줄로 매달려 있다. 진한 갈색의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을 법한 나무 벤치의 색깔로 되어 있고 모양도 그와 비슷하다. 손잡이는 하얀색으로 되어 있고 이 곳에 줄이 매달려 있다. 양쪽 손잡이와 등받이 두 곳까지 해서 총 네 곳에 의지하여 그네는 움직인다. 튼튼해보이기는 하지만 두세사람이 앉을때는 다소 불안할 수도 있겠다. 겁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이라면 혼자 앉거나 작은 아이와 둘이서만 앉을 것 같다.


저 멀리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더 보인다. 중심이 되는 두 노인이 맞잡은 손 사이로 줄무늬 티를 입은 여자가 걸어오고 있다. 남자 노인의 팔뚝에 가려져 얼굴이 잘 보이지 않으나 밝은색 티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고 있으며 신발의 모양을 보아하니 주인공인 노인들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것 같다. 사진 상 남자 노인의 옆 쪽으로 초록티를 입은 여자도 보인다. 실제 키는 그렇지 않겠으나 사진에서는 노인의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오는 사이즈로 보인다. 그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몸통을 대각선으로 둘러 맨 가방과 펴진 어깨 그리고 보폭을 보아 산책이 아니라 경보를 나온 사람같다. 음악이라도 듣는 걸까 발걸음에서 경쾌함이 느껴진다. 아주 작은 어쩌면 점 같이 보일 수도 있는 사람인데 그 존재감이 엄청나다. 그 뒤에는 검정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다. 위 아래 모두 검정이다. 날이 더워 검정옷을 잘 입지 않을 것 같은데. 까만색을 좋아하거나 숨기고 싶은 게 많다거나 튀고 싶지 않다거나 그의 심리는 나도 잘 모르겠다. 멀리 있지만 길 한가운데 서서 아래를 보고 있다. 아마도 핸드폰을 바라보는 것이겠지. 걸음을 멈추게 하는 놀랄만한 연락이라도 받았나 보다. 길을 오가는 방향이 아닌 옆 쪽으로 서있는 걸로 보아 상황의 긴박함을 짐작할 수 있다.


길의 오른 쪽에는 낮은 담장이 있다. 벽돌로 기준을 삼고 짙은 녹색의 쇠 울타리가 쳐있다. 넘나들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 처럼 보이지만 마음 먹으면 쉽게 발을 들어 넘어갈 수 있는 높이이다. 벽돌의 색은 아직 붉다. 길가에 있는 벽돌의 색과 처음부터 달랐을까. 사람들이 발길은 많이 주어도 손길은 많이 주지 않는 모양이다. 틈틈이 들어있는 시멘트도 아직은 견고해 보인다. 무너질 걱정은 없어보이지만 아래쪽에 어설프게 보수한 흔적이 있다. 혹여라도 틈으로 물이차면 안돼니 장마가 오기 전에는 고쳐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울타리 끝에는 아파트의 이름이 붙어 있는 입구가 있다. 쇠로 만들어진 문은 뻥 뚫려 있고 초록 간판으로 간신히 이 장소가 어디인지 말해주고 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시멘트 계단이 살짝 보이는 걸로 봐서는 단지로 들어가는 길이 분명하다.


아직도 시간이 남았는데 더이상 할말이 없다. 나무의 종류를 모른다고 나무 묘사를 넘어 갔으니 여기를 집중적으로 적어봐야 겠다.


전날 비가 왔음이 틀림없다. 나무 사이로 파란하늘이 보이지 않고 흐린 회색이 보여진다. 아니면 구름일 수도 있고 여튼 하늘색은 아니다. 주인공 남자노인 오른쪽으로 기다란 나무가 하늘로 뻗어있다. 오래된 나무는 아닌 듯 하다 몸통의 두께가 사람보다 가늘다. 약간은 쓰러질 듯이 길 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원래 약한 나무일까. 아니면 뿌리를 채 내리기도 전에 벽돌길이 깔렸을까. 사연은 잘 모르겠으나 비바람에 넘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뒤로는 작은 덤불나무들이 있다. 아래에는 붉은 원통 모양으로 구성된 화단으로 구획이 정리되어 있다. 키가 작은 나무들의 잎 상태로 보아 관리가 잘 되는 아파트 단지 인 것 같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잎들이 보이지 않는다. 똑바로 자라는 나무는 아니겠지. 식물들에 관심을 주지 않아서 참 미안하다. 너희를 표현할 단어가 너무나도 부족하구나. 덤불화단 뒤로도 나무들이 있다. 예전 EBS에서 방영했던 밥 아저씨의 미술교실에서 붓의 터치만으로 나뭇잎을 표현했었는데 그 그림과 비슷하다. 가지는 숨어 있는 것이겠으나 커다란 붓으로 찍어낸 듯한 연두빛 잎파리들이 보인다. 큰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울창한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잔잔한 초록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그렇다.


왼쪽에는 잎이 덜 자란 나무들도 종종 보인다. 해가 그 방향에 있어서 사진상으로는 흐릿하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은 아침인가보다. 점심에는 머리 위에 있으니 그림자가 짧지 않은가. 나무들 사이로 은색 가로등도 하나 보인다. 동그랗고 투명한 조명 안에 기다란 전구가 들어있다. 색깔로 보아하니 LED전구 인 것 같다. 위에는 작은 모자를 쓰고 있다. 마치 베트남에서 쓰는 그런 모자같이. 가로등의 불은 아직 켜지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해가 떠 있으므로.


나무들 사이로 아파트가 보인다. 베란다 쪽인 것 같다. 커다란 창문들이 틈없이 붙어 있다. 거실쪽이려나. 그러면 너무 불편할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을 눈을 돌려 안을 바라볼 것 같다. 모든 베란다가 그렇듯이 성인의 허리춤 정도 오는 쇠창살이 붙어 있다. 밖을 내다보는 사람은 없다. 다들 무얼 하고 있을까. 아침이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뒤죽박죽이 된 현재의 내 마음처럼. 한시간 다됐다. 끝!


(마무리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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