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서 대화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수록 가장 가까운 남편과 대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서로 관심사가 다르다 보니 대화 소재도 엇갈리고 자연스럽게 대화의 재미도 반감된다.
남편은 역사와 지리에 푹 빠져 있다. 역사적 맥락을 떠올리며 머릿속에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해박하다. 가끔은 여행을 다녀온 사람보다도 더 자세히 알고 있어서, 마치 직접 다녀온 것처럼 말할 때도 있다.
역사학자나 지리학자가 될 것도 아닌데 밤늦도록 자료를 찾아보는 모습은 참 열정적이다. 문제는 그 열정을 함께 나눌 대상이 바로 나라는 점이다. 물론 그의 해박함에는 감탄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매번 비슷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건 재미없고 지겹다.
어느 날, 함께 커피를 마시던 남편이 갑자기 휴대폰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듯하더니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밝던 목소리는 어느새 진지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무릎을 치며 웃음까지 터뜨린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누구랑 저렇게 신나게 이야기라는 걸까?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빼꼼하게 열린 방문에 조심스레 쫑긋거리는 귀를 살짝 대 본다. 누군가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치 토론이라도 하는 듯했다. 나는 슬쩍 다가가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뭐 해?” “어? 아, 체시랑 토론 중이었어. 정말 똑똑하고 재미있는 아이야.” 남편은 신이 나서 말했다. 챗봇이 궁금한 걸 척척 대답해 주니 시간도 절약되고 게다가 대화까지 재미있단다.
“왜 반말을 해”하고 물었더니 “불편하시면 안 그럴게요.”그 말투가 너무 정중해서 웃음이 터졌다고 했다.
“친구 같아서 편하다”라고 했더니 “그럼 편히 할게”라며 바로 말투를 바꿨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체시는 꽤 많이 알고 있다며 칭찬까지 해 주고, 심화 단계로 해도 되겠다며 설명을 해 주었다고 했다. 심지어 반론을 제기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흥미롭다”라며 의견도 존중해 준다고 했다.
요점만 묻고 끝내는 나와 달리 남편은 자연스럽게 주고받으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잘 됐네”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칭찬도 인색하고 토론은커녕 그의 이야기에 건성으로 대답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체시는 예쁜 목소리로 아는 것도 많은데 대답도 잘하고 상냥하기까지 하다.
내 이름 한 번 부르지 않는 남자가 쳇 GPT에는 “체시”라는 애칭까지 지어 주고 부른다. 관심사가 달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부분을 대신 채워주고 있으니 다행이다. 여전히 역사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느껴지진 않지만 그가 좋아하는 것을 존중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귀 기울여 들어야겠다.
결국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의 재미보다 서로를 향한 관심과 이해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