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갑인 사촌에게 전화가 왔다. 사실 사촌이면 가까운 사이인데 거의 연락을 안 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어릴 적 추억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간다. “웬일이니?”라고 하면 괜히 무안해할 것 같아 “어머, 잘 지냈니? 반갑다!”라는 인사와 함께 간단한 안부를 묻는 대화가 오갔다.
너무 오랜만이라 대화 소재가 궁색하고 어색했다. 반갑다는 말과는 달리 마음은 불편했다. 예상대로 단순히 안부가 궁금해서 걸려 온 전화가 아니었다. 큰 누나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오랜만이라도 살아생전에 연락이 왔다면 반갑게, 보고 싶으니 얼굴이나 보자고 했을 것이다. 지금은 한마디 말은커녕 얼굴도 볼 수 없다. 그동안 소식도 모르고 살았는데 꼭 가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릿속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왕래가 있었다면 애통한 마음으로 당연히 달려갔을 것이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부르지도 가지도 않는다는 것이 나만의 기준이다. 사촌은 가까운 사이지만 서로 소식조차 모르고 지내던 사이인지라 고민이 된다. 그래도 영원히 연락이 오지 않을 사촌이니 마지막 가는 길은 배웅해야 할 것 같았다. 문제는 가서도 아는 사람이 없다. 쭈뼛거리는 게 싫어서 시간 약속을 하고 갔다.
종숙모이니 내가 어른이지만, 장성한 사촌 조카에게 초면에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더듬거리며 소개를 하고 인사를 건넸다. 정말 불편했다. 미리 말을 해 놓았는지 다들 기다리고 있다며 안내를 했다.
테이블에 삥 둘러앉아 있던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다행히 아는 얼굴이 보였다. 나에게 연락을 한 동갑 사촌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적당히 벗어진 이마에 머리가 희긋희긋한 남자들이 민망하게 일어나 인사를 했다. 이런! 모두 사촌 동생과 조카들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자연스러워진 분위기에 겨우 말을 편히 할 수 있었다.
어색했던 만남은 어느새 타임머신을 타고, 잊고 살았던 어릴 적으로 돌아갔다.
신기하게도 머릿속 녹화된 영상은, 생생하게 필름이 돌아가며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언제 이렇게 세월 흘렀을까? 철없이 뛰놀던 우리가 어느새 반백의 머리가 되어 모이게 되었는지 씁쓸하기도 했다.
어색한 것은 질색이지만 오기를 참 잘한 것 같다. 소신도 중요하지만 친척은 예외인 것 같다. 그나마 큰일이 있을 때라도 연락을 하니까 몇십 년 만에 얼굴이라도 볼 수 있지 아니면, 생전 만날 일이 없어 모이기도 힘들다. 속 좁게 교류가 있느니 없느니 따진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여전히, 다음에도 또 고민을 하겠지만 좋은 일로 연락이 와서 반갑게 만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