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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중한 나의 보석.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받지 못한 사랑이 서글퍼져.

by 온오프

작고 소중한 나의 보석을 처음 품던 그날,

나는 내가 믿어왔던 모든 생각들이 무너지는 순간을 맞이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막 태어난 아기가 예쁘다는 말은 사실

조금은 과장된 위로, 혹은 선의의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출산 영상을 보거나

대학 실습에서 실제로 접했던 자연분만 장면은

너무도 생생하고 잔혹하게 다가와 끔찍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 결심했다.

“나는 절대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


하지만 막상 내가 낳은 아이는 달랐다.

처음 눈을 마주한 순간

그 작은 존재는 마치 세상의 모든 빛을 머금은 듯 눈부셨다.

아마도 나는 그 빛에 홀려 눈이 멀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콩깍지가 단단히 씌여 다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후처치가 끝나고 의료진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을 주었다.

고작 5분 남짓,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벅찬 시간으로 내게 남았다.


갓 태어난 송아지를 떠올리듯

아직 모든 게 서툴고 어색한 우리 부부는

삐걱거리며 아이를 품었다.

마치 로봇처럼 굳어버린 몸짓으로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지만

그래도 조심스레 두 팔을 내밀었다.


그 품이 불편할 법도 한데

놀랍게도 아이는 울지도 않았다.

말똥말똥 뜬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내 조그만 입을 벌려 하품을 하고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작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숨결이 내 품에서 전해지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멀어지고

오직 아이의 존재만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제야 나는 실감했다.


이토록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생명체를

내가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깨달음은 벼락처럼 빠르고

강렬하게 내 안에 내려앉았다.

아이가 신생아실로 향하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모든 고통을 잊고 있었다.


살을 찢는 듯한 진통도

뼈를 짓누르던 압박도

모두 희미하게 가라앉아버렸다.

남은 건 단 하나, 오직 사랑뿐이었다.


나는 그 사랑에 무너지고,

그 사랑에 사로잡히고,

결국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토록 황홀했던 순간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면 모든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순진한 착각이었다.

분만 과정에서 온몸에 힘을 너무 세게 주었던 탓일까.

팔이며 다리며 여기저기가 욱신거리고 근육은 쑤셔왔다.

마치 전신이 두들겨 맞은 듯,

몸은 내 것이 아닌 듯 무겁고 낯설었다.


거기다 훗배앓이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출산의 고통에 버금갈 만큼 아프고

불규칙하게 밀려오는 통증은 내 숨을 옥죄었다.

간호사는 자궁 안에 남아 있는 찌꺼기를 배출하기 위해

자궁 마사지를 해야 한다며,

옆에 있던 남편에게 직접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내분한테 해주세요.

생각보다 힘을 주어 꾹 눌러주셔야 돼요.”


남편은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따랐다.

하지만 그 성실함이 화근이었다.

진통 때조차 나오지 않던 욕이

그의 손길이 배 위로 내려앉는 순간 저절로 튀어나왔다.

나도 모르게 악을 쓰며 남편을 노려봤고

남편은 당황한 얼굴로 간호사를 흘깃 쳐다보았다.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르는 기묘한 순간이었다.


회복실에서 잠시 몸을 추스른 뒤,

선생님은 병실로 걸어가라고 했다.


“지금이요? 지금 걸어요? 제가요?”


나는 얼떨결에 되물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내가 과연 걸을 수 있단 말인가.


처음 몸을 일으키기 전부터 가슴은 쿵쾅거렸고

땀방울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남편의 팔에 몸을 기댔다.


천천히 한 발, 또 한 발.

엥? 생각보다 괜찮잖아?

나는 의외로 꽤 잘 걸었다.

물론 남편의 손을 꼭 움켜쥔 채였지만

그렇게 병실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침대에 몸을 눕히고 천장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뭔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왔다.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 태동도,

이따금씩 느껴지는 통증도,

내 안에 느껴 지던 또 다른 심장박동이 없어진 것도

내가 아이를 출산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허전함 그보다 더 깊은 감정으로 다가왔다.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해야 할 순간에

이유 없는 슬픔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쳤다.


사람들이 말하길

아이를 낳으면 가장 먼저 엄마 생각이 난다고 했다.

정말이었다.

엄마 생각이 불쑥 찾아왔다.

원망과 그리움,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나를 붙잡았다.

결국 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육체의 고통이 조금씩 잦아들 즈음

마음의 고통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임신 중에도 감정은 늘 출렁거렸다.

호르몬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내 마음이 예민해진 탓이었을까.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의 굴곡 속에서

나는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모든 감정의 끝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출산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끝없이 흘러나오는 오로와

쉴 틈 없이 몰려오는 훗배앓이를 겪으며

문득 생각했다.

“엄마도 나를 낳을 때 이런 고통을 겪었겠지.

나를 낳고 난 후에도 이 아픔을 견뎌냈겠지.”


정해진 면회 시간,

커다란 통창 너머로 아이를 바라보던 순간에도

같은 생각이 스쳤다.

작고 빛나는 그 보석 같은 아이를 보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느끼던 순간

“이 감정을 엄마도 느꼈겠지.

나를 보며 똑같이 눈물짓고 웃었겠지.”


아이에게 아직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리는 연습을 하며

내 품에 안긴 아이의 작고 따스한 체온을

느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몰캉몰캉한 살결과 숨결이 전해오는 기묘한 생명감

그 순간 밀려드는 모성애에 휩싸이면서도

나도 모르게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 엄마도 이 감정을, 이 벅찬 마음을 느꼈겠지.”


그렇게 나와 엄마를 비교하며 생각하다 보니

결국 도달한 곳은 하나였다.


엄마도 분명 이런 시간들을 다 겪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리를 버릴 수 있었을까.


짧은 면회 시간이 끝나

병실로 돌아온 뒤에도 그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만날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몇 번이고 아이의 사진과 영상을 들여다보며 행복해했지만

행복과 함께 따라붙는 질문은 여전했다.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를 버릴 수 있었을까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내가 받지 못했던 사랑이 생각나

서글퍼져 가는 건

결국 나의 숙명이 되어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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