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내 아이 이야기.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요.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유난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졌고
그저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었다.
마침 긴 연휴가 끼어 있었으니
나의 게으름을 합리화할 핑계는 충분했다.
나는 글을 쓰던 사람이었지만
그 사실마저 잠시 접어두고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부대끼며 지냈다.
낮에는 집 안 가득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정신이 쏙 빠졌고,
밤이 되면 아이들 옆에 나란히 누워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오롯이 엄마로만 살아가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내가 잊고 있던
또 다른 행복의 얼굴이었다.
그러던 중 추석 전날부터 시댁에 머물면서
내 일상의 리듬은 완전히 흐트러졌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뒤섞인 채
머릿속은 자꾸만 멈춰 서 버렸다.
무엇 하나 제대로 붙잡지 못한 채
흐릿해지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알게 되었다.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것’과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그 차이를 직면하자, 이상하게도 글이 쓰고 싶어졌다.
처음엔 스스로가 우스웠다.
내까짓 게 무슨 번아웃이라고.
번아웃이라니, 얼마나 거창한 이름인가.
내겐 그 단어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곱씹어 보니 사실은 달랐다.
언젠가부터 글쓰기가 점점 ‘의무’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기대가 커질수록
나는 더 멋진 문장을 짜내려는 강박 속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란
나의 이야기, 아이들의 이야기, 고작 그 정도였는데
나는 그 한정된 이야기마저
어떻게든 포장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메모장 곳곳에 흩뿌려놓은 아이디어와
언젠가 업로드하려고 미리 써둔 원고들이
하나둘 고갈되어 가는데도,
나는 단 한 줄조차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은 늘 북적거렸지만
정작 내 손끝은 멈춰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애초부터 대단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박수를 받기 위해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저 내 마음에 맴도는 이야기를
솔직히 풀어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바보야, 괜찮아. 네가 시작한 건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잖아.
다른 사람처럼 멋진 문장을 흉내 낼 필요 없어.
네가 살아온 이야기, 네가 품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꺼내면 되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짧지만 깊었던 방황의 시간을 지나
나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 자리란 결국 이야기꾼으로서의 나였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나는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숨을 고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