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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춤, 그리고 다시 시작.

놓아버린 자리에서 글로 다시 일어서는 나.

by 온오프

아침잠이 많았던 나는 게으르다면 게으른 J였다.
무수히 많은 계획을 나름의 기준으로 철저하게 세우지만,
그중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건 겨우 반타작뿐이었다.
입만 번지르르한, 게으른 J.

그런 나에게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죽음이라는 건 내 게으른 계획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았다.
건강한 애도라든가,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은
그때의 나에게 공허하고 잔인하게만 들렸다.
죽지 못해 사는 날들의 연속, 그것이 내 현실이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고,
또 다른 날은 끝도 없이 잠 속으로 숨어들었다.
밀려드는 그리움에 사진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할머니 목소리가 어렴풋이조차 떠오르지 않을 때면
영영 잊어버릴 것만 같아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렇게 버티기 위해 나는 바쁘게 지냈다.
잊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잠시 다른 쪽에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까.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며
남들이 보기엔 “니 몸이 다섯 개냐, 열 개냐” 할 만큼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아냈다.


그래서였을까.
사람들은 나를 두고 ‘일복 많은 사람’이라 했지만,
실상은 내가 일에 매달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탓이었다.
바쁘게 살아야만 애도의 그림자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의 나 역시 늘 바쁘게 지냈다.
블로그 포스팅, 인스타 업로드,
서포터즈 활동과 체험단 활동,
거기에 아동복과 의류 공동구매까지.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는 게
일과는 다른 나만의 취미이자 쉼표였는데,
그것마저 하지 못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스트레스는 점점 더 차올랐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까지는

내 몫이라 여기며 어떻게든 끌고 갔다.

그러나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사람들은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잖아” 하며

자꾸만 나를 파고들었다.


참고 삼키다 결국 탈이 났다.
나는 성격이 고약해서

한계에 닿으면 모든 걸 놓아버리는 사람인데
지금이 딱 그 시기였다.
결국 끈을 내려놓자고 마음먹었고,
다시 ‘엄마’라는 본래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나는 성격이 고약해서

한계에 닿으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편인데
지금이 바로 그 시점에 다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끈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불빛들이 내 마음속에 하나둘 켜졌다.


“글 잘 읽고 있어요, 항상 감동이에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한다면 하는 사람이 너야. 진짜 멋지다.”
“요즘 여러 가지 하는 거 보니까 행복해 보여.”
“너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서 좋아 보여.”


그 따뜻한 말들이 새까맣게 타버린 마음속을 다시 밝혀주었다.
그리고 그 불빛들이 나를 또 다시 글 앞으로 불러냈다.


결국 나는 또 쓰고 있다.
쓰는 순간만큼은 게으른 J도,
일에 떠밀려 사는 바쁜 나도 아닌,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오늘의 내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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