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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죽은 오늘.

죽고 싶었던 나도, 어쩌면 처절하게 살고 싶었다고.

by 온오프

유서.

이 두 글자를 썼을 뿐인데 눈물이 났다.
왜 그랬을까.
아마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한가 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글을 써 내려간다.
한 글자, 한 글자.
마치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무언가를
조심히 꺼내는 사람처럼.

곱씹지 않고, 꾸미지도 않고
지금의 내가 남기고 싶은 말을 담아본다.

시간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을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말들을.


내 삶을 마무리하며 “불행했다”라는 문장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
그저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살아냈다."
그 정도의 문장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 말 하나로도 지금까지 버텨온 내가
조금은 위로받을 것 같다.


사람이 죽기 직전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어느 과학자의 말에 따르면,
그건 죽음의 순간,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그동안 겪었던 모든 경험을
순식간에 되짚어보는 과정이라고 했다.


기억들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애쓰는 몸의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그렇다면 나의 죽음 앞에서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갈 기억들은 무엇일까.
고통의 순간일까.
아니면 나를 살릴 단 하나의 장면이 있을까.


나를 이끌어 돌아오게 만들
그런 따뜻한 무언가가 남아 있을까.

아마도 내가 다시 살고 싶어지는 이유가 있다면
아이들이 아닐까 싶다.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뜨겁게 쓸려 올라온다.


코끝이 시린 이 계절에도
나를 따뜻하게 하는 건
오직 이 작은 아이들뿐이다.


내가 품었던 시간들, 첫 만남.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숨을 고르던 그 순간.
함께 맞았던 사계절의 향기.
햇빛에 반짝이던 머리카락.
꼬물거리던 손가락 하나까지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나를 ‘엄마’라 부르던 순간들.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지
살면서 이토록 실감한 적이 있었을까.
내가 만든 음식을 오물거리며 먹는
앵두 같은 입술도,
잠든 얼굴 위로 떨어지던 작은 속눈썹도.
그 모든 사소한 것들이
주마등처럼 주르륵 스쳐가겠지.


내가 걸어온 길 끝에서
만약 다시 살아보고 싶어졌다면,
그 이유는 분명 이것들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하찮고 가벼워 보일지 몰라도
그건 내 전부였고,
내 숨이었고,
내 목숨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놓아버린 이 숨이
결국 끊어지는 날이 온다면,
‘나’라는 사람의 끝이
조용히 찾아온다면

아프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덜 아프기를 바란다.
잊을 수 없겠지만
언젠가는 잊혀져주기를 바란다.
너희의 생이
내 빈자리 때문에 시리지 않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란다.

염치없이 기도해본다.
무책임한 엄마의 처절한 외침으로 기도한다.


나는 너희를 내 목숨보다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그것조차
내가 가진 오만이었을지 모른다.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할 어미가 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여전히 너희를 사랑할 것이다.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할 이 고백을
이렇게 조용히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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