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리고 어린 소녀는 수많은 세월이 지나 할머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할머니 소녀는 새하얀 눈이 내리는 풍경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만나는 양 깨끗한 옷으로 잘 갖추어 입고 달뜬 마음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온통 새하얀 세상으로 변신한 드넓은 대지와 추위에 떨고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들마다 하얀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어느덧 차갑기만 했던 할머니 소녀의 마음도 새하얀 솜이불로 덮여 따뜻해집니다.
할머니 소녀는 추위도 잊은 채 하늘 위를 연신 쳐다보며 하얀 눈으로 얼굴에 가득 묻히기도 하고 한 발 한 발 내딛일 때마다 발끝에서 들리는 뽀드득뽀드득 소리에 자고 있던 심장이 깨어나고, 그 발자국으로 눈꽃도 만들며 잠시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겁습니다.
아주 오래전 새벽녘, 창문 밖으로 고요히 내리는 하얀 눈의 풍경을 처음 마주했을 때 놀라운 탄성을 내며 자고 있던 아이들을 깨웠던 기억이 할머니 소녀에게는 지금도 겨울눈이 내리면 귓가에 아득히 맴돕니다. 그 따뜻하고 마냥 행복했던 소리들을요.
오늘도 할머니 소녀는 이른 새벽 창문을 바라보며 소리치고 싶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축복의 선물이라고 고이 자고 있는 장난기 가득한 삼남매에게 말이죠. 그 소리가 하늘 구름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와 딸의 귓속에 살포시 내려앉아 들립니다. 얼른 밖으로 나와 하늘의 축복을 느껴보라는 속삭임을요.
수많은 세월이 지나 이제는 하얀 눈이 머리카락에 내리기 시작한 할머니의 딸의 마음 속에도 그토록 하얗고 행복한 함박눈은 영원히 녹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