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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rs. Blue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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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Doh Oct 13. 2024

봄 III

 봄이 한창인 온 마을은 흐드러진 벚꽃잎들로 화사했다. 하늘에서 꽃 잔치라도 하는 것처럼 위에서 내리는 꽃잎들로 거리는 마치 온통 핑크 빛 카펫으로 깔려 있는 듯 보였다. 미세스 블루의  가게도 손님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손톱만 한 예쁜 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함께 들어왔다. 한껏 들뜬 분위기에 기분이 좋아진 맥스는 덩달아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아무리 세상이 온통 새싹들로 새 생명이 움트고 싱그러운 연둣빛 잎사귀들이 돋아나고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도 여전히 “ Mrs. Blue” 가게에  들르는 손님들은 줄지 않았다. 미세스 블루는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손님들 때문에 맥스와 즐기는 한가로운 아침 시간도 가질 수 없을 만큼 점점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어느 날 하루종일 쉴 틈 없는 바쁜 시간이 흘러 어느새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을 무렵 누군가 문을 스르르 열고 들어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꺼먼 먼지를 뒤집어쓴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손님이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입고 있는 작업복과 신발은 하루종일 고된 일을 한 흔적들로 가득했다.

그는 지친 얼굴로 물었다.


" 안녕하세요, 미세스 블루 씨,

이제 일 마치고 집에 가야 하는데, 혹시 어린 딸에게 줄 작은 선물이 있을까요?"


미세스 블루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엄지와 중지를 '탁' 튕기며 대답했다.


" 그럼요, 저 두 번째 줄 끝 맨 위쪽에 보시면 노란색 박스가 있어요. 그 안에 예쁜 곰인형이 있거든요. 아마 따님이 좋아할 거예요."


그는 대답했다.

" 고마워요, 미세스 블루 씨! "


"아, 그리고 잠시만요, 제가 선물 하나 드릴게요, 이건 따님을 위한 선물이 아니고 손님 거예요."


미세스 블루는 구석에서 박스를 꺼내와  남자 손님에게 주며 박스에 대해서 몇 마디 더 해주었다. 박스를 받은 남자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 안에는 그가 이른 아침에 정원에서 정성껏 딴 라즈베리가 있었지만 하루 종일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던 탓에 예쁜 모양은 모두 짓무르져 버렸다. 미세스 블루는 그것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모양이 모두 흐트러진 라즈베리 속에 담긴 그의 딸에 대한 사랑과 진심이 그녀에게도 진하게 가슴속 깊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짓물러진 라즈베리를 손에 쥐자 어느새 그녀의 마음도 붉게 물들어 따뜻해졌다. 미세스 블루는 난감해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하는 그에게 정말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주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서 집에 가서 쉬라고 서둘러 보냈다.

그는 고맙다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가게를 떠났다.


 밖으로 나간 그는 그녀가 알려준 대로 소나무 숲 속에 다 달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앉아 박스를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정성스럽게 담긴 하얀색 깃털로 만들어진 날개와 옷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꺼내 천천히 깃털옷을 입고 날개를 어깨에 걸쳤다. 처음엔 별다른 변화 없이 무거운 일상의 피로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몸은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온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돌덩이 같던 피로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마음속 짐 마저 풀려나갔다. 고단했던 하루의 모든 일들과 걱정의 무게는 날갯짓에 실려 하늘 높이 멀리 날아갔다. 그는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늘 아래 남겨둔 피로와 걱정이 그에게서 멀어져만 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만히 날개에 몸을 맡긴 채 노란 달이 물들여놓은 빛줄기를 따라 편안하게 집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피곤이 모두 사라진 그는 늦은 밤까지 딸과 함께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일러스트

Eunjoo D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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