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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rs. Blue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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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Doh Oct 13. 2024

또다시 봄

  춥고 스산했던 기나긴 겨울이 지나갔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작은 마을은 그렇게 또 한 해를 보냈다.“ Mrs. Blue“ 가게는 사계절 내내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전히 가끔씩 견딜 수 없을 만큼  무례하거나 괴팍스럽고 무서운 사람들도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온몸이 굳어 숨을 쉴 수 없었고 힘든 날들을 참아내며 홀로 맥스와 함께 살았다. 그럼에도 주중에 문을 닫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늘 똑같은 시간에 손님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한때는 그녀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따뜻한 저녁식사와 다정한 대화가 가득하던 집,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집은 침묵에 잠겼고 그녀는 혼자가 되었다. 사랑했던 사람들은 먼 곳으로 떠났고 그녀는 그들에게 전할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의 빈자리에 눈물만 남겨두었다. 그녀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끝내 빈 집을 떠나 멀고 먼 낯선 곳에 발을 내디뎠다.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그녀가 세상에 완전히 혼자라고 느꼈던 날, 한 마리 개가 나타났다. 그 개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는 듯 눈을 맞추고 조용히 그녀의 곁에 앉았다. 그 순간, 그녀는 잃어버린 가족을 떠올리며 목이 메었지만 작은 눈에서 보이던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가 홀로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이름을 맥스라 지어주었고  둘은 곧 세상에서 둘도 없는 서로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갔다.


 맥스는 언제나 그녀의 곁을 지켰다. 맥스의 부드러운 숨결과 눈빛, 모든 행동은 그녀가 과거의 슬픔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가끔 밤중에 꿈속에서 잃어버린 가족을 떠올리며 잠에서 깬 그녀는 맥스의 존재로 인해 다시 안정을 찾곤 했다.


그녀의 생활 중 또 하나의 일상이었던 아침과 밤마다 어디론가 다녀오던 곳은 바로 그녀의 집 뒷마당이었다.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 두 번씩 아침저녁으로 뒷마당으로 나가 한참 동안 일을 했다. 뒷마당 오른쪽에는  커다란 밭이 있었고 왼쪽에는 다양한 꽃들로 가득한 꽃밭이 있었다. 그녀는 밭에 고구마, 감자, 호박 등 온갖 먹거리를 심어 부지런히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 생활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구운 빵과 모양 좋고 싱싱한 채소와 열매들을 골라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저 멀리 다른 동네의 시장에서 팔곤 했다. 가을이면 여러 꽃을 키운 꽃들로 꽃다발을 만들고 작은 꽃바구니와 드라이플라워로 만든 꽃장식도 함께 팔면서 돈을 벌었다. 그녀가 손수 일군 곡물들과 꽃들로 번 돈은 또다시 “Mrs. Blue“ 가게에 필요한 상품을 구입하는데 쓰였다. 손님들에게 절대 돈을 받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그들의 형편과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뒷마당에는 아무도 모르는 또 하나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밭과 꽃밭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호수였다. 멀리서 보아도 꽤나 큰 파란색의 호수였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지낸 그녀는 언제나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건네고 그들의 힘들고 슬픈 이야기를 들어주며 같이 위로해 주었으나 정작 그녀에게는 아무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늘  집에 돌아와 칠흑 같은 밤에 뒷마당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슬픔과 마주해야 했다. 그렇게 흘러내린 눈물이 모여 점점 호수로 변해갔다. 호수는 그녀의 눈물로 가득 찼다. 그 속에는 그녀의 외로움, 잃어버린 사랑,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들이 담겨 있었다. 호수는 점점 짙은 블루색으로 변해갔다.


어느 날 저녁 미세스 블루는 평소처럼 퇴근 후 집에 도착해 뒷마당으로 나갔다. 호수는 평화롭게 빛나고 있었고 그녀의 눈물이 다시 그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그날 평소와는 다른 눈물로 느껴졌다. 그녀는 조용히 호숫가에 앉아 자신이 키운 꽃들이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그녀는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그 꽃들은 그녀의 눈물로 자란 생명이었다는 것을. 뿐만 아니라  작은 생명체들이 그 물속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호수는 슬픔의 호수가 아니라 생명의 호수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 미세스 블루의 집 뒷마당에 있던 검푸르게 짙었던 블루색의 호수는 얼굴을 비추면 또렷하게 보일만큼 맑고 투명한 코발트블루색의 호수로 변했다.


일러스트

Eunjoo D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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