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빵의 기억
어릴 적 추운 겨울은 거실만 나와도 숨을 내쉴 때마다 저절로 입에서 뽀얀 김이 연신 나오던 때였다. 아빠는 겨울만되면 방마다 창문에 두꺼운 비닐을 씌우고는 문풍지를 붙였다. 밖이 뿌옇게 보이던 창문은 늘 답답했다. 그럼에도 추운 겨울은 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태생부터 더위를 못 참아 그런 것인지 겨울만 돌아오면 그냥 좋았다. 바깥으로 나갈 때면 무겁고 두꺼운 내복을 입은 그 위에 옷을 입고도 또 한 번 두꺼운 외투를 덧입어야만 했다. 몸에 비해 둔탁한 옷차림이어도 절대 짜증을 내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어번 엄마가 시장에 갈 때면 언제나 따라나섰다. 누빔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쓰고, 벙어리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두르고, 털부츠까지 완벽하게 무장을 하고 나섰다.
동네 시장은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그때의 그 냄새, 살갗에 닿았던 차가운 공기, 쌀쌀한 공기를 가로지르며 여기저기서 뽀얗게 올라오던 뜨거운 김들, 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치며 걷던 모습들, 추운 날이어도 두 손을 비벼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상인들, 이 모든 기억 속 겨울 풍경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는 한순간이다. 특히나 뽀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갓 쪄낸 찐빵은 보기만 해도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먹음직스럽던 음식이었다. 추운 겨울날 장갑을 벗어 빨갛게 변하는 손도 전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빵을 두 손에 놓고서는 호호 불어가며 먹던 그 맛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며칠 전 갑자기 팥죽이 먹고 싶다는 남편 말에 팥죽을 쑤어 따뜻한 한 끼의 식사로 먹었다. 삶고 남은 것은 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고 소박한 간식거리로 찐빵을 만들었다. 그 모양이 시골스럽고 투박스럽기만 하다. 예전 어릴 적 시장에서 먹던 그 맛을 어찌 재연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변해버린 까마득한 세월에.
나의 영원한 소울푸드여.
food styling & Photo by
Eunjoo D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