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현실 친구는 가성비가 떨어진다?"

“관계 실조”를 앓고 있는 1인 가구

by 야인 한유화

집에 가면 넷플릭스가 기다리고, 잠들기 전까지 유튜브가 나를 웃기고 위로해 준다. AI는 언제든 ‘나 맞춤형’ 대화를 해주고, 내가 피곤할 땐 폰을 내려놓으면 그만이다. 한 달 1만 원 남짓의 구독료로 이 정도의 위로와 재미를 주는 친구가 세상에 또 있을까.

그래서일까, 최근에 “현실 친구는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동호회, 모임 등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면 회비, 식사비, 교통비까지 써야 한다. 오가는데 드는 시간과 웃고 리액션하는 감정 에너지까지 합치면 가성비는 점점 떨어지는 것.




관계를 ‘소비’로 느끼는 시대
요즘 우리는 관계를 ‘투자’가 아닌 ‘소비’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모임을 나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에너지 낭비'처럼 느껴진다. 효율적으로 나를 성장시키는 콘텐츠나 정제된 커뮤니티만을 선호하게 된다. 현실 친구보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더 잘 위로해 준다고 믿는 시대다.

그럴수록 관계는 점점 ‘비싸게 느껴지는’ 일로 여겨진다.
돈과 시간, 감정의 투자 대비 얻는 만족이 넷플릭스·유튜브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순간, 관계는 ‘효율’의 잣대로 평가되기 시작한다. 애매하게 친해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흐지부지 끝나는 관계들과, 그럴 바엔 처음부터 안 만나는 게 낫다는 사고방식. 이 모든 계산이 쌓인 끝에 ‘혼자가 편하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인가. 이런 흐름이 반복되다가 인간관계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면?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에서 한 청년 1인 가구가 자신이 ‘관계 실조’ 상태일지 모른다고 쓴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영양실조는 단순히 ‘밥을 안 먹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먹어도 영양이 불균형하거나, 필요한 시기에 공급받지 못하면 몸이 서서히 약해진다. 관계 실조도 비슷하다. 사람을 만나더라도 얕은 대화만 오가거나, 마음을 주고받는 경험이 거의 없다면,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은 서서히 허기진다.

성인이 되어 1인 가구로 살다 보면, 관계의 공급망은 놀라울 만큼 단순해진다. 회사·동호회·가족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 그마저도 피곤하거나 번거롭다고 스스로 줄이다 보면, 마음이 필요한 ‘정서적 단백질’이 빠져나간다.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유튜브 알고리즘, 넷플릭스 드라마, AI 대화처럼 즉각적이고 안전하지만, 결국 장기적으로는 속을 채워주지 못하는 ‘정서 패스트푸드’다.

이 상태가 길어지면 관계는 선택지가 아니라 부담이 된다. 연락의 타이밍, 말의 온도, 감정의 여운까지 조율해야 하는 ‘관계 노동’이 너무 힘들어 보여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편한 고립’ 속에 오래 있으면, 마음은 점점 더 외부 자극을 소화하는 힘을 잃어간다. 결국 ‘혼자가 편하다’는 말 뒤에는, 실은 영양분이 고갈된 마음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관계는 ‘비효율을 견디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관계는 ‘비효율’을 감수하는 일이다. 감정은 계량되지 않고, 오해는 생기고, 갈등도 피할 수 없다. 대화를 10번 해야 1번쯤 마음이 닿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그 1번의 감각을 위해 9번의 불확실함을 견딘다. 반대로, 9번의 어긋남을 피하기 위해 그 1번마저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우리는 ‘관계 수익률’이 너무 낮다고 느끼는 세상에 살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난 시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그러나 관계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삶의 얼굴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짜 좋은 친구는 가성비로 따질 수 없다. 오히려 관계란, 비효율을 견딜 줄 아는 사람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삶의 고급 옵션이다.




김재용 작가님의 브런치스토리를 읽고 영감을 얻어 작성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