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대디와 개구쟁이 아들의 좌충우돌 동반성장기!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리 더운지 툴툴거리며 아들과 방학 계획을 짜려고 달력을 넘기려던 찰나, 자그맣게 쓰여있는 기념일이 눈에 들어왔다.
'브런치 작가 등단일'
내게 ‘싱글대디 직장인 작가’라는 고마운 수식어를 붙여준 브런치와 함께하게 된 그날을 나는 이렇게 기념하고 있다.
지금이야 나보다 힘이 세진 아들이 집안일을 거들지만, 아이 학교 입학 전에는 그를 재워두고 한밤중에 살림을 하곤 했다.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개며 떠오른 생각들을 끄적였고, 그 글과 그림 몇 편을 엮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그렇게 2021년 6월 30일이 나의 ‘브런치 작가 등단일’이 되었다.
그 해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1학년 때 손이 가장 많이 간다’는 주변 조언에 따라 육아휴직에 돌입했는데, 그 덕분에 아들과 더 돈독해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라는 꿈까지 이룰 수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글을 쓰고, 내가 정한 시간에 브런치에 글을 올린 후 독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진짜 작가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 무렵 출판사 에디터들이 브런치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들은 출판할만한 글, 함께 일할만한 작가를 찾고 있으므로 스스로 정한 루틴을 꾸준히 지켜보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12번째 글을 정해진 시간에 업로드하고 청소기를 돌리던 중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다. 출판사였다!
나의 글이 책으로 출판된다는 건 설레는 일이었지만, 새로운 노력이 필요했다. 에디터와 수차례 원고를 수정하고, 표지 디자인부터 그림 배치 등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을 정했다. 육아와 글쓰기를 나름의 호흡으로 진행해 오던 내가 협업 상황에서 육아 영역이 침범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다행히 출판사 동료들의 배려에 힘입어 <아빠가 엄마야>는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 등단일로부터 딱 1년 만이었다.
출판 후에도 정신없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아빠이자 엄마인 삶은 이어졌지만, 내 내면은 훨씬 풍요로워졌다. 어머니는 내게 '힘든 일에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일로 승화시키는 모습이 자랑스럽다'했고, 회사 동료들도 대단하다며 책을 가져와 사인을 요청했다. 아들과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빠, 난 서점에 있는 책들을 누가 어떻게 만드는 건지 궁금했는데, 아빠를 보면서 조금은 알게 됐어."라는 말을 들었는데, 좋은 가르침을 준 것 같아 뿌듯했다.
책은 내가 더 많은 글을 쓰게 했다. 출판 후 한 달쯤 되던 날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중앙일보 기자가 책을 읽고 칼럼을 연재해 달라고 연락이 왔는데요, 연락처를 전달해도 될까요?"라는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매주 '더중앙플러스'에 육아와 사회 문제를 엮은 칼럼을 연재했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홈페이지에도 육아 인식 개선을 위한 칼럼을 썼다.
책이 '세종도서'로 선정되면서, 부끄럽지만 크고 작은 방송과 잡지 인터뷰도 하게 되고, 정부의 육아 정책 수립을 위한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하게 되었다. 육아 현장에서 내가 겪은 사례와 느낀 점들이 더 나은 정책의 근거가 되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고, 책 한 권으로 이렇게 많은 기회가 내게 주어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브런치는 작가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고마운 존재다. 출판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책을 낼 수 있냐'는 것인데, 이 질문에 나는 여지없이 브런치 홍보대사가 된다. 내가 그랬듯 브런치에 자신의 글을 쓰고, 독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작가로서의 경험을 쌓다가, 책을 출판해서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끝으로 브런치에 <아빠가 엄마야>를 연재할 때, 그 글들을 하나하나 캡처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책으로 만들어 내 꿈을 응원해 주었던 나의 독자이자 동반자인 지현이와 늘 아빠가 제일 멋지다고 말해주는 든든한 아들 시형이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