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송 편
반복과 순환이라는 단순함에
차분함과 정서적 안정감을 더해
자신들만의 음악적 VIBE로 추앙(推仰)하다
60개 넘는 곡이 커버하고, 90개 넘는 곡이 캐논을 샘플링하다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 1653년~1706년)은 바로크시대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남독일오르간악파의 유행을 이끈 오르간 교사였다. 세속음악과 종교음악에 걸쳐 방대한 작품들을 작곡했으며, 코랄 프렐뤼드와 푸가의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중기 바로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자리매김하였다.
Canon은 규칙(Rule)을 뜻하는 그리스어 Kanon에서 왔다. 이는 한 성부(멜로디)가 먼저 나오고, 조금 뒤에 다른 성부가 같은 멜로디를 따라 부르는 형식을 말한다. Pachelbel’s Canon in D Major(1860)는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 1653–1706)의 대표작으로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작곡된 캐논과 지속저음(Ground Bass) 형식의 곡이다. 3개의 바이올린이 한 성부씩 순차적으로 캐논을 이루고, 첼로가 8마디의 베이스(저음) 패턴을 반복한다. 이 베이스 패턴(D - A - Bm - F#m - G - D - G - A)을 '캐논 코드(Canon Code)'라 한다. 이 8마디 베이스가 반복 순환되어 명상하는 느낌과 바이올린들이 선율을 서로 따라 이어지며 반복되며 감정이 고조된다. 즉 간결한 코드 위에 풍부한 화성적 울림이 차분함과 감동을 동시에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샘플링한 곡이다. Only You-Susanna Hoffs(2023) [The Deep End]
Yazoo의 Only You(1982) [Upstairs at Eric's}를 커버하기도 했다.
The Bangles의 리드 보컬이었던 Susanna Hoffs.이 밴드의 명곡으로 Manic Monday, Walk Like an Egyptian, Eternal Flame 등이 있으며, 특히 Eternal Flame은 Susanna Hoffs가 작사·작곡 작업에 참여했다.
Memories-Maroon 5(2019) [JORDI]
Memories는 파헬벨의 선율을 직접 샘플링하지 않고, 코드 진행만 차용(Interpolation)했다. 파헬벨 캐논의 조성을 바꾼 버전이다. 애덤 리바인(Adam Levine)의 강렬한 음색이 파헬벨의 그것을 넘어서고 있다.
애덤 리바인(Adam Levine)은 팝 보컬 중에서도 팔세토 표현이 매우 뛰어나며, 섬세한 감정선을 잘 살리는 보컬로 유명하다.
Fancy-Doja Cat(2018) [Amala]
Hook/Riff를 인터폴레이션(Interpolation)했다.
Fancy는 자신감,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타인의 시선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다. 분위기는 캐논 특유의 우아하고 웅장한 배경과는 좀 다르지만, 클래식 코드 진행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What If-Jason Derulo(2010) [Jason Derulo]
스트링 패턴과 피아노 아르페지오에 캐논의 화성 구조가 미약하지만 직접적으로 반영(Replayed Sample)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함께였다면(What if we were meant to be)”라는 운명적인 사랑을 파헬벨 캐논의 고전적 화성 구조를 R&B 비트에 접목-스트링과 신시사이저를 결합-하여 서정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사운드를 완성했다.
Beautiful in White-Shane Filan(2010) [Love Always]
“You look so beautiful in white…”
“From now to my very last breath…”
가사는 결혼식 날 신부를 바라보는 사랑의 고백을 담고 있다. 캐논의 순환적·영원성 있는 코드 구조가
'끝없는 사랑'이라는 메시지와 부드럽고 진심 어린 보컬과 잘 어우러졌다. 셰인 파일런(Shane Filan)은 전 Westlife 멤버로 이곡에서도 익숙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Life is cool-Sweetbox(2004) [Adagio]
Sweetbox는 ‘클래식 샘플링 팝’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1997)에서는 J.S. Bach의 Air on the G String을, Don’t Push Me (2001)에서는 Beethoven의 5th Symphony, Hate Without Frontiers(2004)에서는 Mozart의 Requiem을 샘플링했다.
Life Is Cool은 원곡 Canon in D의 화성과 흐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위에 Jade의 보컬 멜로디가 얹혀 현대적 리듬·드럼 비트을 추가한 대표적인 크로스오버 팝송이다.
Graduation(Friends Forever)-Vitamin C(2000)
졸업식 시즌마다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물론 이 곡보다는 Lulu의 To Sir With Love가 우리에게는 훨씬 더 친숙하다. 이런 분위기의 다른 곡으로 Green Day의 Good Riddance(Time of Your Life), Rascal Flatts의 My Wish를 꼽기도 한다.
Vitamin C(본명: Colleen Fitzpatrick)가 부른 이 곡은 고등학교 혹은 대학 졸업을 앞둔 청춘들의 우정, 추억, 이별,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을 담고 있다.
As we go on, we remember / All the times we had together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며, 함께했던 모든 시간을 기억할 거야"
And as our lives change, come whatever / We will still be friends forever
"삶이 변하더라도, 어떤 일이 닥쳐도 우리는 영원히 친구일 거야"
이 구절은 졸업생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상징적인 메시지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C U When U Get There-Coolio feat. 40 Thevz(1997) [My Soul]
이 곡은 캐논의 현악 선율 위에 랩과 코러스를 얹은 형식으로, "인생은 여정이며, 결국 모두 같은 곳으로 간다"는 긍정적이면서 철학적인 가사가 캐논의 순환적 화성 구조와 잘 맞아떨어진다.
Nas의 I Can (Beethoven 샘플), Puff Daddy의 I'll Be Missing You(The Police 샘플)와 더불어 '클래식 샘플링 랩'의 대표하는 노래이다.
Go West-Pet Shop Boys(1993) [Very]
원곡은 1979년 Village People의 Go West지만, Pet Shop Boys 버전(1993)은 장엄한 합창과 클래식풍 오케스트레이션을 더해 ‘캐논 코드’를 구조적으로 강화했다. 특히 코러스 부분의 화성 진행이 캐논의 순환적 느낌과 거의 동일하다.
곡 전체가 마치 행진곡과 찬가를 섞은 듯한 웅장한 구조를 가지며, 희망·진보라는 메시지와 캐논의 반복적 상승감이 잘 맞물려 팝과 전자음악 속에서 '고전적 안정감'을 구현했다.
Go West
서쪽으로 가자(Go West)는 자유, 새로운 시작, 이상향(Utopia)을 상징하는 가사로,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상징한다. 1970년대에는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해방의 방향’을 은유하는 노래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 곡에서는 소련 붕괴 이후 자유를 향한 희망이라는 정치적·문화적 의미로 재해석되었다.
Cryin'-Aerosmith(1993) [Get a Grip]
Cryin'의 주요 진행은 G–D–Em–C 또는 G–D–Bm–C로, 이는 캐논 코드(Ⅰ–Ⅴ–Ⅵ–Ⅲ–Ⅳ–Ⅰ–Ⅳ–Ⅴ)의 축약·변형형이다.
Cryin'은 팝·록 발라드에서 흔히 쓰이는 ‘감정 고조형’ 진행을 띠고 있는 록 발라드로, 캐논의 영향권 안에 있다.
How, Where, When-Cleo Laine(1980) [Sometimes When We Touch]
곡의 주된 코드 패턴이 캐논의 진행을 변형·축약한 형태로 반복된다. Laine의 재즈/클래식 크로스오버 특성상, 진행은 약간의 재즈 보이싱으로 꾸며지지만, 기본 뼈대는 파헬벨 캐논의 순환형 진행이다.
Cleo Laine은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드는 보컬리스트로, 여기서는 바로크적 조성 위에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재즈 보컬을 얹으며 ‘고전적 틀 안에서의 자유’라는 대조를 보여준다.
제목 How, Where, When은 사유와 회상의 순환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데, 이는 캐논의 순환적 화성 구조와 일치하여 '질문-응답-회귀'의 패턴이 음악적 구조에도 녹아 있다.
Fullness of Wind-Brian Eno(1975) [Discreet Music]
역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다운 샘플링이다.
파헬벨의 Canon in D를 바탕으로 한 실험적 변주가 중심을 이뤘다. 원곡을 구조적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한 미니멀리즘 리컴포지션(Recomposition)이다.
파헬벨의 캐논 코드(D–A–Bm–F#m–G–D–G–A)를 유지하면서 템포를 늘리고, 음역을 확장해 공간감 있는 사운드 드론으로 변형한다. 반복 구조를 단순화해 에코·지속음·페이징으로 시간 감각을 흐릿하게 하여 ‘시간 속에 녹아드는 캐논’이라는 철학적 시도를 했다. 테이프 루프 시스템을 이용해 음의 길이와 간격을 자동적으로 변형시켰다. 결과적으로 '무한히 순환하는 캐논'을 만들어 냈다.
In the Garden-Bob James(1974) [One]
Bob James는 클래식 선율을 스윙 없이 리드미컬한 라운지 재즈로 재해석했다. 하모니카, 플루트, 일렉트릭 피아노가 어우러지며 마치 캐논이 재즈 클럽에 들어온 듯한 부드러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원곡의 반복 구조를 유지하되, 솔로 섹션마다 화성 텐션을 확장하며 즉흥적 변주를 더해 곡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한마디로 클래식 코드 진행을 모던 재즈 어법으로 옮긴 앞서간 곡이라 할 수 있다.
Rain And Tears-Aphrodite’s Child(1968)
60년대 말 Rain and Tears는 클래식이 팝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이후 1970~80년대의 '클래식 샘플링 팝'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가사는 현대적 감정선(비, 눈물, 이별)을 담고 있으며, 클래식의 엄숙함 대신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Vangelis의 신기에 가까운 신시사이저 연주와 보컬 Demis Roussos의 떨림 있는 보이스는 바로크풍 코드 위에서 서정적인 멜로디를 노래한다. 이는 바로 '캐논이 교회에서 라디오로 이동한 순간'이었다.
The End of the World-Skeeter Davis(1962)
이 곡은 캐논 코드의 '순환적 안정감'을 팝 발라드에 적용한 초기 사례 중 하나로, 이후 60~70년대 팝/컨트리 발라드에 영향을 주었다. 파헬벨의 Canon in D를 직접 샘플링한 것은 아니지만(Interpolation), 후렴과 코드 진행에서 캐논 코드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반복형 화성 진행을 보여 준다. 여기에 Skeeter Davis의 보컬은 부드럽고 애절하여, 반복적인 화성 구조 위에서 슬픔과 상실감을 극대화한다. 그렇다 보니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에 꼭 들어가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