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기형도의 노래들
시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시가 꼭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그의 시가 건네주는 울림...
마지막 시월 날, 곡이 마침 "10월에"이다.
기형도 시인은 음악을 좋아했다. 기타를 치며 노래도 잘했지만 작사·작곡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기형도는 〈2인의 척탄병〉이며 〈에덴의 동산〉이나 트윈 폴리오의 곡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2인의 척탄병〉은 하이네의 시에 슈만이 곡을 붙인 가곡이다.
술자리에서 기형도가 자주 부르던 노래의 원주인은 송창식과 조용필, 가끔 조영남도 섞였고 그때그때 유행하던 노래도 불렀다. 남들이 따라 할까 봐 일부러 음정을 높게 잡았다가 공연히 핏대를 세우는 고생을 자주 했다고 한다.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허리를 약간 굽힌 채 눈을 감은 그는 시키면 주저 없이 노래하고, 노래하고 노래했다”
- 성석제의 글에서
누구였을까
직선의 슬픔같이
짧은 밤 간이역 호각 소리같이
한 사나이가 비밀처럼 지나갔다.
- 이 쓸쓸함은......
니컬렛 라슨(Nicolette Larson, 1952년~ 1997년)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팝·컨트리·록 보컬리스트로, 1970~80년대에 활동했다. 특히 닐 영(Neil Young)과의 협업 및 그녀의 대표곡 Lotta Love로 잘 알려져 있다. 시인은 그녀의 The Angels rejoiced를 좋아했다.
겨울 풀장 밑바닥에 피난민처럼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이어요?
오늘도 순은으로 잘린 햇빛의 무수한 손목들은 어디로 가요?
- 겨울 판화
시인이 죽기 몇 년 전 영화 《씨받이》(1987)와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가 인기리에 상영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 음악을 담당한 이가 김영동 작곡가이었으니 분명 이 영화음악을 좋아했으리라! 아마도 김영동 작곡집 (삼포 가는 길) (1982)의 어디로 갈꺼나, 조각배, 한네의 이별을 좋아했을 듯하다. 앨범 [슬기둥] (1988)도 좋아했을 것이다. 노래가 귀해서 앨범의 모든 노래를 듣지는 못했을 것이고! 테이프에 녹음해서 서로 선물해 주던 때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하는 것은 당시의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는 크나큰 기쁨이었다. DJ의 멘트가 끝나자마자 빨갛고 동그란 점을 꾸우욱 눌러야 했다. 아주 재빨리!!!
손 모아 마음 모아 다듬었기에
오늘의 밝은 불이 불이 섰노라
어둡고 그늘진 곳
다시 어디냐
횃불처럼 달려간다
밝고 큰길로
천만년 물려다가 무궁함 되어
너와 나 따로 있고 남남 있으랴
의외의 곡이 눈에 띈다. 건전가요 '손 모아 마음 모아'이다. 아마도 이 노래는 시대를 역행하는 제도적 장치의 노래이지만 가사만큼은 건전했으니 시인은 이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남궁옥분의 목소리라서 좋아했을 듯하다.
2005년 백창우가 '백창우, 시를 노래하다' 앨범에 <빈집>을 직접 곡을 붙여 발표했다.
1993년 조하문은 4집 앨범에 '엄마 걱정'에 곡을 붙인 '열무 삼십 단'을 발표했다.
2018년 장사익의 9집 앨범 자화상에 직접 곡을 붙인 '엄마걱정'을 발표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는 신림중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 서울 중앙고에 진학한다. 중앙고는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에 위치하고 있다. 안양에서 중앙청을 오가는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또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거리가 도보로 20여 분 거리였다고 한다. 땀을 뻘뻘 흘리기도 하며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다. 즐겨 듣던 카세트테이프에는 국악에서 클래식, 트롯, 팝송까지 다양하다.
“좋아하는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녹음하곤 했어요. 음반이 귀한 시절이었으니까요. 아직도 어머니 집에는 동생이 좋아하던 들국화, 김정호가 부른 가요 등 여러 가수들의 테이프가 많아요.” - 기향도 님의 말에서
기형도문학관에는 시인이 즐겨 듣던 카세트테이프 몇 개가 전시돼 있다. 가요, 클래식, 국악, 합창곡 등 시인이 듣던 음악은 종횡무진이었다. 편식이 없다.
- 김태완 기자의 말
《시조 제1집 인간문화제 김월하》 《김영동, 슈베르트》《숭실남성합창단 애창곡 모음 제2집》《서정윤 시낭송집 홀로서기》《한국의 농요 2 이소라 채보》《가요 60 이미자(李美子)》《부부 듀엣, 남편에게 바치는 노래》 등이 전시돼 있었다.
엔지니어라고 적혀있는 조병준은 고등학교 절친으로 이 곡들을 녹음해서 시인에게 선물했다.
Side A
Kisses of Fire (ABBA)
S.O.S (ABBA)
Don't Pull Your Love (Hamilton, Joe Frank & Reynolds)
All I Know (Art Garfunkel)
Spirits(Having Flown) (Bee Gees)
Massachusetts (Bee Gees)
Morning has broken (Cat Stvens)
Peace Train (Cat Stvens)
Oh, Very Young (Cat Stvens)
Angels Rejoiced (Nlcollete Larson)
Side B - 밥 딜런(Bob Dylan)의 노래
Mr. tambering Man (원 제목은 Mr. Tambourine man이다.)
Love Mnus Zero/ No Limit
Like A Rolling Stone
Blowing In The Wind
Just Like A Woman
I Want you
Knocking On Heaven's Door
시인의 '안개'와는 다르게 이 날은 구름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목화솜을 하늘에 날려 코발트 하늘빛에 깊숙이 파묻혀 편한 하루를 즐기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문학관을 나와 뒤편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홍시와 떡을 먹고 그 그윽함을 포만감으로 바꾸어 놓은 밝은 오후였다.
* 이 번 글은 월간 조선 김태완 기자의 글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