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거니 Jan 11. 2022

전 돈 때문에 일해요

그래도 솔직해서 좋구나

얼마 전 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다. 체크남방에 청바지 그리고 슬리퍼. 얼굴에는 자유분방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회사와 관련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도중 대표가 말한다. "전 돈이 목표예요. 저희 팀원들도 그렇고요. 다들 자기가 사고 싶은 차종이나 살고 싶은 동네, 집의 평수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회사를 잘 키워서 00사에 매각을 하려고요."


대표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취업했다. 조직이 커지고 매출은 올랐지만 성과는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사실 리스크를 안고 사업을 시작한 창업자와 월급을 받으며 다니는 직원의 처우가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퇴사를 했다. 자신이 목표한 큰돈을 벌기 위해. 그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곳엔 최고급 요트와 서울 한복판에 있는 큰 집, 성공한 CEO라는 이미지가 있다.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묘한 감정이 든다. 쿨하고 멋있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하다. 물론 불쾌한 불편함은 아니다. '너와 나는 다르다' 수준의 불편함이다. 마치 평소에 먹지 않던 미묘한 맛의 사탕을 먹은 기분이랄까.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뒤로는 다른 이의 욕망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기로 한다.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정말 '불편'해지는 지점은 타인의 욕망을 함부로 판단하고 훈수를 둘 때부터다. 돈이 좋다고 하면 속물이라고 욕하고 돈이 싫다고 하면 현실도 모르는 철부지라는 비난을 듣는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자유라지만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되는 시점에는 주의해야 한다. 그럴 땐 차라리 아무 말 없이 듣는 게 최고다. 어차피 난 널 바꿀 수 없고, 너도 날 바꿀 수 없으니까.


나와는 너무도 다른 그 사람을 보며 배운 건 욕망을 구체화하고 실천하려는 태도였다. 난 왜 일하고 있을까? 어떤 목표가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하루하루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편인 걸까? 그토록 선명하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의 키워드는 '충만함'이다. 충만함이란 의미 있는 시간에 느껴지는 감정을 말한다. 삶이 길을 잃었을 때 따라갈 수 있는 나름의 이정표다. 가능하면 충만하게 살 것. 그게 나 자신의 인생에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충고다. 돈이 날 충만하게 만든다면 돈을 추구하면 된다. 오랜 기간 관찰한 결과 난 돈으로 충만해지는 사람은 아니다.


돈이 주는 자유, 성취감, 교환가치는 좋다. 애초에 돈이 없으면 생존할 수도 없다. 살아있는 한 계속 돈을 벌고 써야 한다. 다만 내 인생, 혹은 일의 목표가 돈이라기엔 어쩐지 부족하다. 분명 이 이상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찾아 헤맨다. 책 <방황하는 사람은 특별하다>는 이를 방황이라고 표현한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방황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어떤 경지에 이르면 쉽사리 정착하게 된다. 꼭 만족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주변에서는 말한다. 이제 그만 헤매고 타협하라고. 억지로 참고 견뎌보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게 나만의 여정을 떠난다. 사실 이런 이는 소수다. 돈이나 타인의 시선, 관성에 따라 사는 삶은 손쉽게 추구할 수 있다. 사방에서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며 부추기고 강제한다. 어쩔 때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근하게. 사실 특이할 건 없다. 인류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장면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큰 차, 큰 집, 큰 별장을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내면의 충만함을 따라가는 순례길이 쉬울 리 없다. 이런 가치관을 남에게 설명할 때마다 벽에 부딪친다. '아, 그렇구나'하면서 심드렁하게 날 보는 그 눈빛이라니. 어차피 닿지 못할 이야기를 왜 한 걸까 후회만 생긴다.


그러다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면 눈이 번쩍 뜨인다. 흔치 않은 사람이다. 그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했던 내 존재가 인정받는 느낌이다. 평소에는 고양이 발톱처럼 감추고 살던 생각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방황하는 사람은 흔치도 않거니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마음껏 스스로를 내보이기에 바깥은 너무나 냉담하니까.


굳이 누구나 볼 수 있는 브런치 같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금이라도 더 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존재는 하는 건지 궁금해서. 그냥 그렇게 궁금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월요병 없는 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