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육아

자화상 4

by 구름 의자

30대에 접어들면서 결혼에 대한 열정이 커져갔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더 늦기 전에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부모님은 서른이 훌쩍 넘어 술이나 퍼마시고 놀러다니는 나를 마땅찮아 하며

적당한 상대를 찾아 시집 보내고 싶어 하셨고,

나 역시 결혼할 사람이 있으면 이 놈의 따뜻하지도 않은 집구석에서 기꺼이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에게는 귀신 꿈 외에 두 가지 악몽이 있는데, 하나는 수능 전 날의 꿈이고,

다른 하나는 결혼 적령기를 놓쳐서 노처녀로 늙어가는 꿈이다.

그런 꿈을 종종 꾸고 나면 화들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살아도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튼 당시의 나는 그랬다.

감사하게도 나는 적당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눈에서 하트가 떨어지지 않은 채로 결혼에 골인을 했다.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로맨스였고,

내 인생에서 그렇게 행복한 적은 없을 만큼 꿈 같은 신혼여행도 다녀왔다.

이제보니 장거리 연애에 주말부부였다는 사실도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 후 바로 아이가 생겼는데, 나는 곧 주말부부라는 걸림돌에 걸려 자주 넘어지고 울었다.

임신 기간 남편이 없을 때마다 슬픔과 우울감이 홍수처럼 밀려왔고,

사랑은 점점 집착으로 바뀌어 답도 없는 긴 하소연과 투정을 하며 눈물로 보낸 적이 많았다.

다행히 첫 아이를 낳고 나서 6개월 만에 남편이 다시 서울로 발령이 나서 함께 살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다행스러웠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든든한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행복한 일인 동시에 아주 어렵고 고된 일이기도 했다.

첫 아이를 낳고 2년후 둘째 아이를 낳았다.

육아와 함께 내 인생은 완전히 장르가 바뀌어버렸다.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할 정도이다.

나의 숱한 외로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사랑은 로맨스가 아니라 동지애 같은 느낌으로 변했다.

먼 산을 쳐다보며 했던 상상이나 감상은 팔자 좋은 헛된 망상으로 취급되었다.

주변의 자연물이나 사물에 대해 관찰하고 생각하거나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을 되뇌이며 감상에 빠지거나

외로움 따위를 하소연할 여유가 없었다.

내 삶은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할 이리저리 통통 튀는 말랑말랑한 아이들로 가득 차버렸다.

육아와 집안일에 고군분투하며 지긋지긋한 설거지와 청소, 빨래들과 함께

땀 냄새나고 눈물로 얼룩진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엄마가 된 나는 많은 것을 놓고 살았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나.

영화를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운동과 노래를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음주를 즐겨했던 나.

음식을 가장 천천히 먹고,

누군가에게 챙김을 받거나 그러길 원했던 나.

사랑을 주는 것보다는 받는 걸 더 좋아했던 나.

나의 희생보다는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을 더 자연스럽고 편하게 받아왔던 나,

타인보다는 나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더 충실하게 집중했던 나.

내가 받아야 했던 모든 관심과 사랑이 아이들에게로 옮겨지면서

내 안에 배려와 인내, 희생과 양보, 나눔의 가치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었다.

닭다리 하나를 누구보다 먼저 집고

오직 나를 위해 예쁜 옷과 신발을 사는데 돈을 썼던 내가,

어느 순간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아이들 입을 먼저 살핀다.

살코기가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며

아이들의 볼록해지는 배를 보면 흐뭇해한다.

닭볶음탕이나 치킨을 먹을 때 닭다리를 아이들에게 건네고,

'엄마는 닭 가슴살도 맛있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게 거짓인지 진심인지 나도 모르겠다.

그럴 때면 어릴 적 오빠와 나에게 생선 살코기를 다 발라 흰 밥 위에 얹어주고

내장이 달린 가시를 가져가 '이 부분이 제일 맛있어'라고 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나는 그 말씀이 왜 그렇게 진심처럼 들렸을까.

힘들고 고단해서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한숨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더 많은 이해와 용서, 희생을 할 마음이 새로이 채워진다.

예전 같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신력이 내 안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모성애라는 것은 정말 위대하고 신비롭다.

이 세상이 사랑으로 창조된 게 아니라 우연히 생긴 거라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삶을 변화시키는 기적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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