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 커넥션>
진화의 목적은 대(代)를 이어나가기 위해 생존 가능성을 높여가기 위함이다. 자연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생존법을 가진 다양한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각자가 가진 생존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큰 틀의 관점에서 나의 삶에 적용할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정어리, 멸치, 고등어와 같은 물고기들이 바다 속에서 커다란 무리를 형성하는 이유 중 하나는 포식자들에게 혼동 효과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무리 앞에서 사냥꾼은 자신의 먹이가 될 대상을 고르는데 감각적 과부화를 겪는다. 때문에 사냥꾼들은 거대한 무리를 쪼개려고 노력한다. 산호초에 사는 일부 포식자들은 물고기 떼를 바위로 몰아 더 작은 무리로 나뉘도록 한다. 특정 목표가 명확해질수록 사냥 성공률은 올라간다. 한 실험에서는 영양 무리 중 몇몇의 뿔에 흰색 페인트를 칠했더니, 사냥의 희생양이 될 확률이 높아졌다.
컬럼비아 대학의 심리학자 셰나 아이엔가(Sheena Iyengar)와 마크 레퍼(Mark Lepper)의 잼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슈퍼마켓에 두 개의 테이블이 있었다. 한 테이블에는 6종류의 잼이, 다른 한 쪽에는 24종류의 잼이 진열되었다. 손님들은 두 테이블 중 한 곳을 골라 잼을 시식했다. 손님들이 더 많이 몰린 곳은 24종류가 진열된 테이블이었다. 그러나 손님들이 실제 잼의 구매(사냥 성공)까지 이어진 경우는 6종류의 잼이 진열된 테이블이 훨씬 높았다(24가지 선택지는 단 3%의 손님만 구매, 6가지 선택지에서는 30%에 가까운 손님이 구매). 이러한 결과의 이유는 선택지가 많아지면 비교 대상이 많아 결정이 어려워지고, 내가 선택한 것이 과연 최선일 것인지에 대한 불안이 커진다. 결국 아예 선택을 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선택지를 몇 가지의 명확한 목표로 줄여 행동의 성공률을 높이는 행위는 <퓨쳐셀프>에서 우선순위 3개를 선별하고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과 닮아있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어가는 요즘 나는 수많은 정보의 흐름 속에 압도되어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물고기 떼 앞에서 당황하는 내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내가 가진 능력과 자산을 돌아보고 우선순위를 정리한다. 그것이 수많은 목표 중에 하나라도 확실하게 낚아챌 수 있는 길이다.
선택의 집중이 개인에게 미치는 교훈이었다면, 이제 우리가 속한 환경이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교훈을 살펴보고자 한다. 노예사냥개미는 이름 그대로 다른 개미들을 자신의 노예로써 사냥한다. 노예로 잡힌 일개미들은 노예사냥개미의 유충을 보육하는 일을 담당한다. 그들의 보육실에는 노예가 되기 전 자신들의 원래 여왕이 죽음을 당하기 전에 낳은 유충과 자신들의 새로운 군주가 된 노예사냥개미 여왕의 유충들이 공존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다.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노예 일개미들에게 목숨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노예사냥개미의 유충은 노예 일개미들의 유충과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방법을 배운다. 보육실에서는 노예 일개미들의 냄새를 흉내내려는 노예사냥개미 유충과 가짜 냄새를 흉내내는 유충을 골라내기 위한 노예 일개미들이 군비 경쟁을 통해 각자의 능력을 진화시킨다.
또 다른 종류인 농부 개미들은 '감로'라는 달콤한 영양분을 쉽게 얻기 위해서 진딧물을 가축으로 들였다. 그런데 수많은 세대 동안 개미와 공존한 어떤 진딧물 종은 자신의 몸을 보호해주는 밀랍 코팅을 생성하는데 투자하는 비용을 줄였다. 개미가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감로가 과잉생산 되는 경우 개미는 일부 진딧물을 먹어치우며, 다른 먹이가 나타나면 진딧물 무리를 아예 통째로 먹기도 한다.
개미 사회의 두 가지 사례는 우리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노예사냥개미의 보육실에서 벌어지는 '속임수 vs 탐지' 경쟁은 경쟁적 환경이 어떻게 각자의 능력을 더욱 뾰족하게 갈고 닦는지를 보여준다. 개미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진딧물의 진화 방식은 일견 바보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대를 이어나갈 적절한 생을 보장받는 진딧물에게는 가장 적합한(the fittest) 방식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며 자신을 보호하는 것보다 개미들에게 유익한 감로를 생산하는데 투자하는 것이 목적을 이루는데 더 현명한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 자신의 생존 환경으로부터 개선하고 투자할 능력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환경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한 마디로 정리한 문구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진료를 대기하는 데 어떤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 놀러가면 다 놀러온 사람들이고, 병원에 가면 다 아픈 사람들이야.
나한테 하신 이야기도 아니고, 그냥 흘려가는 이야기였지만 그 말은 내 마음 속에 박혔다. 병원은 건강이라는 가장 중요한 자산에 문제가 생겨서 온 사람들이 모여있는 환경이다. 그곳에서는 평범한 일상이 박탈당하는 곳이며 평범했던 일상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 치열한 곳이다. 주말에 방문하는 도서관은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무언가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환경이다.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나름 좋은 자리는 금방 매진이 된다. 직접적으로 그곳에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지만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비록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문제집을 풀러 온 아이들이나 같이 공부하러 왔다가 1층 로비에서 친구와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학생들(나의 예전 모습;;)도 있지만 어떠한가. 그 환경에 속하기 위해 노력한 자들이다. 어떤 집단에 속해있는가는 자신의 관심과 능력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알게 모르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크지만 남의 눈치를 보고 질투심이 많았던 어린 나는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비교 대상을 멀리하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 역시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좀 더 멀리, 좀 더 크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좋은 방향으로의 성장을 생각하게 만드는 집단 속에서의 나라는 존재도 필요하다는 것을 요즘 크게 느낀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거나,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거나, 내가 배우고 싶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이는 곳에 나가는 것이 바로 그런 방법들이다.
자연계의 각기 다른 생명체의 생존방식을 보며 나의 삶에 적용할 교훈은 명확했다.
"개인으로서 목표를 선택하고 집중하며, 집단으로서 성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