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생일 선물로 나는 책 한 권을 만들었다.
20대 동안 읽었던 수백 권의 책에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얻은 인사이트를 내용을 넣었다. '20대를 이렇게 마무리하면 되겠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이렇게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나 자신을 정밀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내가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을 깨달았다.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기록했고, 성찰했다. 나는 훌륭한 수집가였다.
하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는 실행가는 아니었다.
이 모든 훌륭한 Input을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Output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놀랍도록 적었다. 읽은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삶에 적용하고 시도해 본 것은 솔직히 매우 적었다.
20대에 손에 꼽는 '실행'이었던 유튜브 도전은 나에게 큰 교훈을 안겨주었다. 나는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이 분야에 대한 전문성도 없는데'와 같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행동을 미루었다. 그러나 결국 실행해본 결과, 실행 전에 했던 고민들이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 고민들인지 깨달았다.
예를 들어 나는 영상에 깔리는 BGM이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실제로 편집을 해보니 BGM이 없으면 매우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유튜브를 하기 전에 했던 수많은 고민 중에 BGM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실용적인 고민은 들어있지 않았다. 실제로 해 봄으로써 더욱 실질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책 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차나 표지 디자인, 책 날개의 구성요소와 들어갈 문구, 책 페이지는 어디에 위치했는가에 대한 고민은 실제 책을 써보지 않았으면 해보지 않았을 고민이다.)
또한 나는 '넓고 얕게'에 중독되어 있었다. 훌륭한 작가의 책 덕분에 가끔 분야를 뛰어넘는 통찰을 엿볼 수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주어진 통찰 이상의 것을 볼 수 없었다. 물론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더더욱 서툴수밖에 없었다.
최근 읽었던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자서전인 <생각하는 기계>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재설계는 원자 수준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TSMC는 핀FET라는 새로운 반도체 제조 기술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만들어진 트랜지스터는 실리콘 회로기판 위로 상어 지느러미처럼 돌출되어 있었다. 만약 사람이 극도로 매끄러운 실리콘 표면 위에 설 수 있다면, 이 핀 형태의 트랜지스터는 마치 소련식 아파트 블록처럼 200개의 원자가 세워져 있다."
원자 200개 높이의 정밀함.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스마트폰 속에 이런 미친 정밀도가 숨어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더 충격적인 부분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혁신은 대중으로부터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이는 트랜지스터, 즉 컴퓨터에서 1970년대 이후 나타난 가장 중요한 물리적 업그레이드였지만, 그 의미를 알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은 100명 중 한 명도 되지 않았다."
"반면 엔비디아 내부에서는 이 상어 지느러미 모양의 트랜지스터가 엄청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칩 설계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서 작업했다. 회로를 육안으로 보이는 수준으로 확대한다면 머리카락 정도의 가는 폭으로 테니스 코트를 채우는 정도가 아니라, 로드아일랜드주 전체를 덮을 수준이 되었다."
원자 단위로 이루어지는 칩 설계 수준은 일반인보다 이 분야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이 일화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예술가 친구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예술가로서 나는 이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볼 수 있지만, 과학자인 자네는 이걸 분석해서 따분한 것으로 만들어버리지 않는가?"
파인만은 이에 대한 반박으로 꽃 세포들의 복잡한 활동 또한 아름답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의 단위는 센티미터나 미터 단위의 규모 뿐만 아니라 더 작은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이다. 또한 꽃의 색깔이 곤충을 유인하여 자신의 번식을 위해 진화했다는 사실로부터 흥미로운 질문을 이끌어낸다. 이 지식에 따르면 곤충은 색을 볼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곤충에게도 미적 감각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이끌어낸다. 어떤 지식을 깊게 앎으로써 알 수 있는 아름다움도 존재한다.
이렇게 20대를 책으로 마무리하며 30대 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워봤다.
첫째, 매달 하나씩 작은 실행 프로젝트를 만들어보겠다.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 했던 '쓸데없는 고민들'을 더 이상 하지 않기 위해서다.
아이디어가 생기면 일단 해보고, 실패하면서 배우는 방식으로 바꾸려고 한다.
누구나 어설픈 단계가 존재한다. 그것이 부끄러워 피한다면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
어설픈 모습은 자신에게 투자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여기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감이 필요하다.
둘째, 특정 분야를 정해서 깊이 가지기
마케팅, AI, 리더십, 기록 방법 등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들이 보인다. 이를 토대로 시기를 정하고 해당 분야에 대한 학습을 집중적으로 늘려가는 것이다. BGM의 중요성을 몰랐던 것처럼, 분명 내가 모르는 '원자 200개 높이'의 디테일들이 숨어있을 것이다.
작은 변화를 충분히 쌓아가는 과정에서 혁신이 발생한다. 20대 초반의 나와 20대 후반의 내가 다른 것처럼 또다른 혁신을 이룩하기 위해 조금 더 도전적이고 깊이있는 방향으로 앞으로의 시간을 맞이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