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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를 긍정적으로 재구성해보다

by Nova B
지금까지 수년간 자기 자신을 비난했는데 효과가 있었나요?
이제 자신을 인정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세요.
- 루이스 헤이



나는 낙관적이기보다 비관적인 사람에 가깝고, 안정보다는 불안을 느끼는 게 친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나와 더 친숙한 '부정이'는 긴 세월동안 곰곰히 살펴보아야 하는 존재였다. 나는 '부정이'에게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로는 '부정이'가 도대체 뭐가 나쁘냐는 역발상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2>에 나온 '불안이'는 비록 지나치게 미래를 걱정하다가 주인공 라일리의 자존감을 무너뜨렸지만, 적절한 불안은 미래의 자신을 위해 투자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인(動因)이다. 내 마음속 '부정이'에도 나는 동일한 교훈을 가진다. 불평, 불만만 가지는 '부정이'는 스스로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지만, 자신을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개선하는데 이 감정을 발판 삼는다면 '부정이'는 훌륭한 하나의 자아가 된다. 대안 없는 불만은 공허한 것이다.


두 번째로는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감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감옥을 만든다. 이 감옥은 자신이 쌓아올린 감옥이다.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신경써야 할 일이 많아지고, 스스로의 기대감을 충족하지 못한 작은 실수에 끊임없이 자책하게 만든다.

그러나 누구나 어리석은 일을 하고 실패를 한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완벽주의의 역설은 완벽해지기 위해선 불완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완수를 반복해야 완벽에 근접해진다. 그러니 자신의 불완전함을 수용해야 한다. 완벽할 필요도 없고, 완벽할 수도 없는데 완벽해지지 못한 자신을 괴롭히며 내 모든 걸 비난할 필요는 전혀 없다.


지난 해 신 박사님의 멘토링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나의 지난 20대를 돌아보았다. 돌이켜보니 잘한 게 없는 것만 같았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게 뭘까 고민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듯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나의 20대 전체를 부정하고 싶지만은 않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행동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경험자아와 기억자아라는 두 가지 자아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는 실험에서 대장내시경 중인 환자들에게 10분마다 자신의 고통을 0~10 사이로 표현하여 기록하는 실험을 진행했다.(요즘에는 대장내시경을 할 때 마취제를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마취제를 사용하지 않고 대장 내시경을 진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총 154명의 환자가 참여했는데 각 환자마다 내시경 검사 시간은 달랐다. 제일 짧았던 환자 A는 4분, 가장 오래 걸린 환자 B는 69분이었다. 상식적으로 고통의 총량을 계산한다면 B환자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검사가 끝날 때쯤 기록한 고통 점수는 A 환자는 7점, B환자는 1점이었다. 고통의 총량으로 따지면 B환자가 많았지만, 검사 이후에 이 경험을 복기했을 때 마지막이라는 '특정 시점'에 고통이 심했던 환자 A가 환자 B보다 대장내시경 검사가 더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고통의 총량이 경험 자아의 영역이고, 특정한 순간이 기억 자아의 영역이다. 이 실험에 따르면 우리가 과거를 평가할 때에는 경험 자아에 발언권이 없다. 우리의 과거 중 어떠한 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가 중요한 기억 자아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20대를 전부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 뭐라도 잘한 게 있지 않을까? 그렇게 고민한 나의 기억 자아는 '독서'와 '기록'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들고 나왔다.


있어보이고 싶다(?)라는 다소 유치하고 불순한 동기로 시작하긴 했지만, 20대 초반부터 꾸준히 독서와 기록을 이어왔다. 비문학 영역에서 최대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고, 책에서 읽은 인상깊은 내용이나 흥미로운 컨텐츠, 개인적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와 관련된 내용들은 메모 도구를 활용해 기록해왔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동시에 충족하면서 20대의 마지막 나에게 줄 의미있는 선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떠올렸던 것이 바로 책 쓰기(Project. BlueLight)였다. 돌이켜보니 언젠가 나도 책을 쓰고 싶다는 모호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그 꿈을 실현해보기에 딱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물 아홉 생일날 출간하는 것을 구체적인 목표로 삼아 글을 쓰고 모았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라는 풍부한 Input과 이 모든 것을 모아둔 기록 저장소(나는 Mind Palace 또는 Personal Internet이라 부른다) 덕분에 작업은 훨씬 수월했다. 글을 쓰기 위한 컨텐츠 선별, 자료 수집, 참고 문헌은 나의 잠재 의식과 메모장에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조각조각 이어붙이는 작업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나의 과거를 긍정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책 쓰기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독서와 기록으로부터 배운 비판적 사고, 유연하고 겸손한 자세와 더불어 고립 속에서도 독립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책을 집필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키웠다고, 결코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해준다. 그렇게 불완전한 나의 과거를 긍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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